다 글렀다...
이재(제)는...
청춘도 꽃...
時節(시절)도 꿈같이 흘렀서라.
차라리...
꽃잎처럼 苦惱(고뇌)와 피투성이에 젖은 이 몸을
이 강물 위에 던져 彼世(피세)에서 나의 행복을 구하면 어떠리
아 안타까운 나의 祈願(기원)이여...
단 한번이라도 그대와 만나고저 살고 있소...
위 글은 미군이 한국전쟁 당시 파평면 장파리 임진강에 건설한 리비교 철빔(거더)에 남아 있는 내용이다. 마치 한편의 詩(시)로 읽혀진다. 글 옆에는 ‘조국통일’이라는 큰 글씨가 페인트로 쓰여 있다. 작자는 별과 꽃도 그려넣었다. 이 글은 파주시가 다리를 철거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는데, 아마도 다리 공사에 동원된 한국군이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1952년 11월 엑스레이 프로젝트로 명명된 임진강 콘크리트 다리 건설에는 한국인 노동자 150여 명이 동원됐다. 당시의 임진강 칼바람은 혹한의 추위였다. 김호덕 상병이 1953년 1월다리 공사 중 전사했다. 그렇게 사투를 벌인 ‘엑스레이 브릿지’는 미국독립기념일인 7월 4일 대전지구 전투에서 사망한 리비 중사의 이름을 따 ‘리비교’로 헌정됐다.
파주시는 현재 한국전쟁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리비교를 여섯 토막으로 잘라 철거하고 있다. 다리를 새로 놓는다는 이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