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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박정희 대통령 은혜 기린 비 풀이나 좀 깎아줬으면…”

“뭘 그렇게 찍으슈?”
“아, 네… 옛날 건물을 찍고 있어요. 할머니, 이 동네 사세요? 저 건물은 뭐에 썼던 건물이에요?”
“저거요?”
“네, 저기 저 지붕이 벗겨진 건물이요.”
“공장이었어요. 근데 주인이 누군지 저렇게 쓰러져 가는데도 와 보지도 않아요.”



 적성면 가월리에 사시는 할머니가 비를 맞으며 사진을 찍고 있는 취재진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할머니는 취재진이 찍고 있는 건물 옆에 사신다고 했다. 공장이 얼마나 됐냐는 물음에 양수장을 관리하는 사무실이 있었고, 그 옆에 공장을 지었으니 그래도 꽤 오래됐다고 한다. 양수장을 설명하던 할머니는 속이 상한 듯 이렇게 말했다.


 “사진사 양반, 사진 잘 찍으면 저기 저, 큰 나무 아래 비석 좀 찍어다가 높은 사람들한테 보여주시구려. 우리 동네가 저 귀하고 고마운 분들의 은혜 때문에 살게 됐는데, 이제는 풀구덩이가 될 정도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으니… 여하튼 저기 저 풀섶에 가서 한 번 보고 좋은 일 하는 셈치고 도와줬으면 정말 좋겠네요.”


 할머니가 가리킨 큰 나무 아래 풀섶을 헤치고 들어가니 ‘적성면개발기념비’라고 적힌 비석이 나온다. 지금은 비룡대교 방향으로 새 도로가 생겼지만 예전에는 군부대 앞을 돌아가는 좁은 도로가 있었고, 그 길 옆에 비석을 세운 것 같았다. 이 비는 밖에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돼지풀과 작은 나무를 올라탄 넝쿨로 뒤덮여 있다.


‘적성면개발기념비’에는 ‘1973년 10월 적성면 농민 일동’이라고 적혀 있다. 당시 적성면장은 이용한(1932년생) 씨였다. 이용한 씨는 제11대 적성면장으로, 1973년 3월부터 1983년 1월까지 재직했다. 이 면장은 면사무소 서기로 시작해 공화당에 입당했다가 별정직 면장으로 10여 년간 근무했다.



 ‘적성면개발기념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파주지역 박명근 전 국회의원을 기리는 글이 이렇게 기록돼 있다.



 높고 험한 산간에 자리잡은 우리 적성은 굽이굽이 흐르는 임진강을 옆에다 끼고도 메마른 땅을 적시지도 못한채 가난에서 헤어날 줄 모르던차 朴正熙(박정희)대통령각하의 중농정책과 이를 받들어 朴命根(박명근)국회의원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하여 율포지구에 一六ㅇ 정보, 가월지구에 四二四 정보, 장파지구에 二八ㅇ 정보의 농토에 수리시설을 함으로써 하루아침에 묵은 땅이 기름진 옥토로 변한 것이다. 이로 말미 암아 본면 농업인구의 대부분이 혜택을 받게 되었고 그 생산량은 이전에 비하여 二.四배로 늘어나 농민 소득의 증대를 기 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낙후된 우리 면을 잘살게 만드는데 힘을 다하여 주신 朴正熙대통령각하와 朴命根국회의원의 은혜를 잊을 길 없어 후손에까지 이 고마움을 길이 새기려 여기에 이 비를 세운다.



오늘의영상





손배찬 전 파주시의회 의장 ‘흔들리지 않는 길’ 회고록 출간 손배찬 전 파주시의회 의장이 고향 파주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이야기를 담은 회고록 ‘흔들리지 않는 길’을 출간했다. 1962년 야당3리의 옛 지명인 ‘아홉 우물’에서 나고 자란 손배찬은 ‘아홉 우물’의 유래를 이렇게 전했다. “마을에 우물이 아홉 개가 있었죠. 그래서 ‘구우물’이라고 불렀어요. 실제 내가 중학교 다닐 때까지도 크고 작은 우물이 여러 곳에 있었는데 이 중에 가장 큰 ‘아범물’에서 동네 사람들이 빨래를 하곤 했어요. 그런데 어른들한테 전해 들었던 우물의 의미가 구름으로 비유돼 ‘구름우물’이라고도 했죠. 그 바람에 경의선 운정역이 구름 ‘운’에 우물 ‘정’으로 씌어졌다고 해요.” ‘아홉 우물’ 소년 손배찬은 서울로 유학을 가 동국대학원에서 행정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고향 파주에 뿌리를 내리고 파주시의회 의장과 파주시청소년재단 대표이사를 역임하는 등 파주 구석구석을 발로 뛰며 시민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가 신조로 삼아온 현장에서 답을 찾는 생활정치를 실현하려고 했다. 그는 회고록을 펴내게 된 동기를 “우리 사회는 내란이라는 위기를 민주주의로 이겨냈고, 국민이 주인인 나라임을 증명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말한 진짜 대한민국의 정신은 다름을 존중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