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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그때 목욕탕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해방구”

미군 기지촌 생활을 한 할머니들에게 당시 하루 중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물었다. 할머니들은 약속이나 한 듯 목욕탕에 가는 것이었다고 답했다. 할머니들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포주한테 붙잡혀 강제로 미군을 상대했던 아가씨들은 포주가 풀어놓은 건달들로부터 늘 감시를 받아야만 했어. 어디로 도망가지 못하게 하는 거지. 그러다보니까 우리들도 포주나 건달 눈을 피해 집에 연락을 해야 하거나 물 좋은 업소가 어디에 있는지 정보를 주고받으려면 서로 만나야 할 거 아냐? 그런데 잠깐 누굴 만난다고 하면 눈치 빠른 포주가 승낙을 안 하니까  몸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다는 핑계를 대고 거의 매일 목욕탕에 가서 만나는 거야. 실제로 몸에서 냄새가 나면 포주는 망하는 거야.”



 할머니들에게 목욕탕은 해방구였다. 가족에게 편지를 써서 때밀이 종업원에게 좀 부쳐달라고 부탁하거나 목욕탕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달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방법이 꼭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때밀이가 부탁했던 내용을 거꾸로 포주에게 알려줘 얼굴만 빼고 온몸이 시퍼렇게 될 정도로 두들겨 맞는 날도 있었다. 그렇지만 목욕탕 핑계 밖에는 달리 둘러댈 만한 것도 없었기에 목욕탕은 그야말로 애증의 공간이었다.


 1960년대 파주군에 목욕탕은 미군 기지촌을 중심으로 문산(임진면) 3곳, 파주(주내면) 4곳, 법원(천현면) 4곳, 파평면 2곳, 금촌(아동면) 1곳, 적성 1곳 등 총 15개가 있었다. 교하, 조리, 탄현, 광탄, 월롱면에는 1970년대부터 목욕탕이 생기기 시작했다.



 1965년 파주군 총인구는 18만2,404명으로 남자 89,352명 여자 93,052명이었다. 여자가 남자보다 3,700명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중 목욕탕이 있는 문산의 경우 여자가 26,188명으로 남자보다 740명 더 많았다. 파주는 여자가 899명 많은 22,499명, 법원은 여자가 1,011명 더 많은 27,181명, 파평면 역시 여자가 남자보다 507명 많은 12,055명이었다.


 이들 지역에는 정전협정 이후 파주시에 미군이 집중 주둔함에 따라 미군클럽 등 기지촌 종사자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미군이 없었던 교하, 탄현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성 인구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1965년 교하면 인구는 총 16,228명으로 이중 남자가 8,255명, 여자가 7,973명이었다. 탄현도 총 10,404명 중 남자 5,328명, 여자 5,076명으로 남자 인구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1962년 파주읍 연풍리 흑인출입지역에 생긴 중앙목욕탕의 경우 옷 보관함이 남탕에는 30개, 여탕에는 72개가 있었던 것으로 조사돼 당시 목욕탕 손님이 주로 여성이었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1960년대 파주의 농촌 생활문화를 감안하면 목욕탕 이용객은 대부분 기지촌 여성들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현재 파주시의 목욕탕은 총 35곳으로 금촌 7곳, 문산 5곳, 교하 5곳, 운정 5곳, 법원 4곳, 광탄 4곳, 조리 2곳, 적성, 월롱, 탄현면에 각각 1곳씩 있다. 대표적 기지촌이었던 파주읍과 파평면에는 현재 운영하는 업소가 한 곳도 없다.
이와 관련 파주시가 파주읍 연풍리 도시재생 프로젝트 추진과 함께 전국 최대의 미군 기지촌이었던 용주골의 중앙목욕탕과 문화목욕탕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다볼 것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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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배찬 전 의장이 동해로 간 까닭은... 파주시의회 손배찬 전 의장은 29일 강원도 동해로 내달렸다. 동해로 떠나기 며칠 전 취재진에게 연락이 왔다. 독립운동가 장준하 선생 시비와 새긴돌이 강원도 어디에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그러면서 평소 존경했던 분이어서 지난 17일 탄현면 통일동산에서 있었던 장준하 선생 50주기 추도식에도 다녀왔다며 파주 장곡리에 세워졌던 장준하 선생 시비와 새긴돌을 꼭 한 번 보고 싶다고 했다. 파주바른신문은 손 전 의장을 직접 안내하기로 했다. 손 전 의장은 광탄면 산골짜기에 있던 장준하 선생의 묘역이 2012년 파주시민의 뜻으로 탄현면 통일동산에 모셔진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통일동산으로 모셔올 때 ‘장준하 선생 추모공원추진위원회’가 있었더라고요. 그 당시 파주시의회 민주당, 국민의힘, 진보당 등 선배 의원님들이 소속 정당을 떠나 추진위원으로 이름을 올리신 걸 보고 정말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손배찬 전 의장은 장준하 선생 추모공원이 조성되고 2년 뒤 제6대 파주시의회 의원이 됐다. 그리고 제7대 때는 의장에 당선됐다. 손 전 의장은 시의회 운영의 핵심 가치를 여야 협치로 삼았다. 5대 선배 의원들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장준하 선생 추모공원 조성에 나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