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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소식

아버지는 가난한 노동자였습니다.

    

 “개울에 작은 다리가 하나 있었어요. 위쪽 개울은 좁았는데 다리 있는 데서 넓어졌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개울 옆에는 논과 미군부대가 있었어요.” 46년 만에 한국을 찾은 이미성(54. Stephane Myers) 씨의 기억이다.

 

 이미성 씨는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5살 때 건설노동자인 아버지를 따라 파주로 왔다. 그런데 공사현장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네 명의 자녀를 끌고 파주를 떠나 고양시 대자동에 있는 다리 밑에서 살았다. 이미성 씨는 어머니가 날품팔이를 나가면 오빠와 함께 두 동생을 보살폈다.

 

 1973년 초 어머니가 폐결핵과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났다. 앞길이 막막해진 네 남매는 경찰관의 도움으로 홀트아동복지회로 보내졌고, 그해 7월 미국 오레곤으로 각각 입양됐다.

 

 최종환 파주시장이 이미성 씨를 위로했다. 이 씨는 자신이 살았던 마을을 가 보고 싶다고 했다. 현장사진연구소 이용남 사진가가 개울과 붙어 있는 미군부대와 다리가 있는 곳을 몇 곳 특정해 길잡이를 했다.

 

 우선 광탄면 신산리에 있었던 미군부대 캠프 스탠톤으로 갔다. 이 씨는 부대 울타리를 끼고 흐르는 개울과 다리를 바라보며 옛 기억을 떠올렸다. 이곳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다음으로 파주읍 연풍리의 캠프 베어드(Camp Beard)와 미군휴양소(RC#1)가 있었던 개울을 찾아갔다. 이 씨는 애룡저수지로 이어지는 다리 아래를 살폈다. 이곳에서도 이 씨의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 법원읍의 미군병원 캠프 어윈(Camp Irwin)과 캠프 케녹(Camp Knox)이 주둔했던 자리를 찾아갔다. 이 씨는 눈물을 흘리며 답답해했다. 길을 함께 나서 준 일행들에게 미안한 생각 때문이었다. 일행들은 이 씨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했다.

 

 다시 문산으로 향했다. 선유6리 칠정말 다리에 섰다. 칠정말에는 옛 판자집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씨의 눈이 커졌다. 뭔가 낯익은 풍경을 본 것 같았다. 미군부대 캠프 로즈(Camp Rose)가 있었던 곳이라고 설명해줬다. 다리를 오가며 살피던 이 씨는 좁은 개울이었는데 개울이 넓다며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개울은 1996년 문산 수해 때 넓어진 것이라고 알려줬다.

 

 선유4리 캠프 펠렘(Camp Pelham)과 캠프 자이안트(Camp Giant)2006년까지 주둔했던 곳으로 갔다. 이 씨가 차를 세워달라고 했다. 울음을 터트렸다. 산 위에 있는 교회를 가리켰다. 아버지가 저 야트막한 산에서 집짓는 일을 했고, 자신의 집은 개울 건너 반대쪽에 있었는데 어느 날 엄마가 도시락을 싸서 아버지에게 갖다 주라고 해 이 개울을 건넜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오빠와 함께 엄마의 가게 심부름을 가다가 돈을 개울에 떨어뜨리는 바람에 그 돈을 찾으려고 저 아래 미군부대(캠프 자이안트)까지 갔었는데 개울에는 작은 돌멩이가 많았다고 했다. 이 씨가 살던 마을은 현재 선유산업단지로 변했다.

 

 이미성 씨의 미국 입양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첫 번째 양부모집에는 3명의 친자녀와 6명의 입양 자녀 등 9명이 있었다. 양부모는 빨리 미국 문화에 적응하길 바랐다. 그래서 한국어로 말하는 것과 한국에 대해 얘기하는 것도 금지했다. 결국 1년 만에 한국어와 한국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잃어버렸다.

 

 양부모님은 이사를 자주 했다. 그런 까닭에 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웠다. 글은 집에서 조금씩 배워 읽고 쓰는 데는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그러나 친구들을 사귈 수 없어 늘 외로운 날을 보내야 했다.

 

 결국 이 씨는 15살 때인 1980, 캘리포니아에서 살고 있는 입양 언니의 딸을 잠깐 돌봐주고 오겠다며 집을 나온 후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미성년자인 이 씨는 국가의 보호를 받는 피후견인으로 지정돼 위탁가정에 보내졌다. 그때부터 학교에도 다니고 좋은 친구도 사귈 수 있었다.

 

 이미성 씨는 현재 결혼한 지 28년 된 남편과 20살 아들, 그리고 친남동생과 함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살고 있다. 이 씨는 이번 한국 방문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친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지만 파주의 개울과 아버지가 일했던 산등성을 본 것만으로도 내 모국과 나를 새롭게 찾은 것 같아 행복하다. 특히, 잃어버렸던 한국 이름을 도장에 새겨 주신 최종환 파주시장님과 파주시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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