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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소식

미군 위안부 문산성병진료소 왜 매각했나?

김경일 파주시장이 파주읍 연풍리 일대 성매매집결지 폐쇄를 새해 첫 사업으로 꼽았다. 이에 따라 26일 성매매집결지 정비를 위한 선포식을 연풍리 옛 문화극장에서 갖고 성매매집결지 가 있는 대추벌 쪽으로 가두행진을 할 예정이다. 그리고 파주시는 집결지를 정비한 후 그 자리에 자활시설인 여성인권센터 설립 등을 고민하고 있다. 이는 전북의 성매매집결지 선미촌 사례를 본딴 것으로 보인다.



 본지는 그동안 한국전쟁과 함께 파평, 적성, 문산, 파주, 법원, 광탄, 조리, 월롱, 금촌 지역에 형성된 미군 기지촌의 상흔을 기록해왔다. 그 중 양색시로 불렸던 미군 위안부의 상처가 너무 깊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 기록물을 미군 위안부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  증거로 제출하는 등 법원의 증인으로 참여하면서 자치단체와 국가의 책무를 주장해왔다.


 대법원은 지난해 9월 기지촌 위안소를 운영한 것이 정부 주도의 국가폭력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특히 미군 위안부들이 매주 보건소에서 강제로 성병검사를 받아야 했고, 검사 결과가 양성이면 법원의 신체구속 영장 없이 불법으로 낙검자 수용소(몽키하우스)에 감금했다며 국가는 미군 위안부들에게 손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1960년대 파주군보건소 성병관리대장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양색시를 ‘미군 위안부’라고 명시했다. 그리고 성매매집결지 여성에 대해서는 ‘윤락녀’로 표기해 미군 위안부를 성매매와 구분했다. 당시 미군 위안부를 성병검사 했던 진료소 건물은 현재 문산 선유리에 있는 문산지구 성병진료소가 유일하다.



 파주시의회 이용욱 전 의원(현 경기도의원)은 문산성병진료소 건물을 미군 위안부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파주 근현대사의 역사관으로 보존될 수 있도록 건물 상태를 조사해 필요할 경우 매입할 것을 김영준 복지정책국장에게 주문했다. 그러나 파주시는 현재 성병진료소의 역사를 보존하는 것보다는 성매매집결지에 여성인권센터 설립을 계획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이는 한국인을 상대한 성매매집결지와 정부가 외국군대 군인의 성적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형성한 미군 기지촌의 기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 정책으로  판단된다.


 현재 파주시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문산성병진료소는 문산읍 선유리 664번지에 연면적 166.62m², 건평 156.22m²에 지상 1층과 지하 1층의 시멘트 벽돌로 1978년 건축물 대장에 등록됐다. 황용선 전 파주부시장은 취임 한 달만인 2007년 8월 1일 토지와 건물이 불일치하고 노후화돼 재산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성병진료소 건물의 매각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파주시는 대한감정원(17,078,550원)과 한국감정원(16,662,000원)에 건물에 대한 감정평가를 의뢰해 산출평균액 17,372,000원을 최저입찰가로 적용 2008년 7월 17일 재산 매각 입찰 공고를 했다.


 최고가 낙찰 방식으로 진행된 성병진료소 건물 매각 입찰에는 총 39명이 참여해 최저입찰가의 13배가 넘는 231,311,100원을 써낸 임광빈 씨에게 최종 낙찰됐다. 건물의 토지 소유주는 기획재정부이다.



 “미군클럽에서 일하거나 미군과 계약 결혼한 여성들 모두 성병검사를 받아야 했었어. 만약에 거부하면 파주군청 공무원들이 강제로 끌어다가 검사를 받게 하거나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법원읍 초리골이나 금촌에 있는 몽키하우스(성병관리소)에 감금시켰었지. 일 주일에 두 번씩 검사를 받았는데 일찍 가지 않으면 줄을 서서 몇 시간씩 기다리기 일쑤인 데다가 그 추운 겨울에 속옷도 입지 않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으면 월남치마가 바람에 풍선처럼 부풀어올라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끗거리며 웃고는 했었지.” 열아홉 살 때부터 문산 선유리에서 미군 위안부 생활을 한 ‘베기박’의 증언이다.


 파주시보건소 이한상 과장도 “우리집이 선유리였는데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가려면 성병진료소를 지났어야 했는데 그 진료소 앞에 수십여 명씩 줄지어 서 있는 거예요. 우린 그때 그 여자들을 양색시라고 불렀었죠.”라며 성병진료소를 기억했다.


 파주시가 문산성병진료소 건물을 콕 짚어 매각하게 된 사유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파악할 수 없었다. 그리고 최저입찰가의 13배를 넘게 주고 이 건물을 사들인 까닭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파주시가 성매매집결지를 정비한 후 그 자리에 여성인권센터를 설립하기보다는 한국전쟁으로 인한 우리의 근현대사를 뒤돌아 볼 수 있는 성병진료소 건물을 다시 사들여 기지촌 사람들과 미군 위안부의 삶을 되짚어보는 기억의 공간과 교육의 현장으로 조성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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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그래도 떡국은 나눠야죠.” 대추벌 성매매집결지 골목에 어둠이 깔리며 2025년 한 해가 저문다. 집결지 동쪽과 서쪽 길목에 경찰 승합차의 경광등이 사납게 졸고 있다. 깊은 골목으로 들어서니 손님을 기다리던 유리방 대기실이 짙은 커텐과 판넬로 막혀 있고, 발길 뜸한 골목을 뿌옇게 비추고 있는 와사등이 나이 먹은 전봇대에 기대어 힘겹게 서 있다. 순간 유리방 틈 사이로 웃음이 흘러나온다. 박수 소리도 들린다. 평소 안면이 있던 업소여서 문을 두드렸다. 와사등만큼 세월을 산 성노동자가 커텐을 제치고 빼꼼 내다보더니 반갑게 문을 열었다. 성노동자 대여섯 명이 모여 떡국을 나누고 있다. 손님과 여행을 떠났던 성노동자가 대전을 대표한다는 케이크를 사왔다. 1956년 대전역 앞에서 작은 찐빵집으로 시작했다는 성심당 케이크이다. 잠옷 차림의 두 여성은 평일에는 운정신도시와 인천 등 수도권에서 ‘오피’와 ‘쓰리노’ 등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단골손님과 지방 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파주댁으로 불리는 여성도 금촌 시장 골목에 있는 선술집(니나노)에 나가거나 운정신도시 노래클럽과 ‘스웨디시(전신 맛사지)’ 업소에 나간다고 한다. ‘언니’라고 불리는 두 성노동자는 집결지에서 단골손님을 상대로 영업을 하다가 주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