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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소식

[용주골 사진사] “연탄 리어카 끌던 그 골목 찍으려고요.”

사진모임 ‘용주골 아거스’ 이병순 어르신이 직접 찍은 필름을 현상했다. 1946년생인 이병순 어르신은 미군이 철수하기 전인 1960~70년대 미군클럽과 기지촌 여성의 집에 쌀과 연탄을 배달했다.


 미로처럼 생긴 용주골 좁은 골목은 덩치 큰 미군과 기지촌 여성들로 늘 북적였다. 바퀴가 납작해질 정도로 연탄을 실은 리어카는 한 손에 맥주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여성의 허리춤을 틀어쥔 눈 풀린 미군 병사들의 틈을 헤치며 내달렸다.



 이병순 어르신은 당시 파주군에서 생산되는 ‘부일연탄’과 ‘대진연탄’보다는 가격이 조금 비싼 ‘삼표연탄’을 취급했다. 연탄은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용주골은 산에서 나무를 해 생활하는  여느 농촌 마을과는 달리 미군부대에서 나온 감자박스로 칸칸이 막아 방을 만들고 루핑 지붕을 씌운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연탄 수요가 엄청났다,


 “연탄배달을 하며 마음이 아팠던 일도 많았죠. 좁은 골목을 헤쳐나가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런 건 몸으로 때우면 되는 일이었죠. 그보다는 내가 배달한 연탄을 피워놓고 자살했다든지, 또 문틈으로 연탄가스가 새어들어 세상을 떠난 양색시들 얘기를 들을 때면 나 때문에 죽은 것 같은 죄책감이 들기도 했죠.”



 어르신은 그런 기억을 사진으로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그걸 어떻게 사진으로 말할 수 있는지는 자신할 수 없지만 그래도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배우면서 찍겠다고 했다. 마음으로 어렵게 찍은 36컷 흑백필름이 며칠 전 어르신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왔다. 어르신은 골목에 세워져 있는 녹슨 리어카를 여러 컷 담았다.


 첫 필름 현상을 한 그날 이병순 어르신이 연탄배달을 하며 응어리졌던 사연을 털어놨다. 하루는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지인이 연탄을 주문했다. 지인은 허리도 제대로 펼 수 없는 얕은 계단 밑에 연탄을 쌓아달라고 했다. 어르신은 연탄 100장을 한 장 한 장 굴려 계단 사이에 쌓았다. 그런데 그 지인은 100장이 맞느냐고 따졌다. 어르신은 어렵게 쌓은 연탄을 다시 끌어내 지인에게 확인시켰다. 지인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자리를 피했고, 어르신은 그 연탄을 계단 밑에 다시 넣으며 검은 눈물을 적셨다. 그렇게 40년이 흘렀지만 어르신은 아직도 그 지인과 말 한마디 섞지 않는다.



 미군 기지촌은 1차산업인 농경산업에서 제조산업인 2차산업을 제대로 겪지 못한 채 3차산업인 서비스산업으로 넘어갔다. 특히 기지촌의 서비스 대상은 미국의 하류문화인 군사문화에 노출된 미군이었다. 종사자들은 미군이 뿌리는 달러의 사회경제적 위세를 등에 업고 농산물과 생활용품을 팔아 살아가는 마을 주민을 억누르는 지역사회의 지배자 역할을 했다.


 파주시 도시재생사업은 이렇듯 군사시설에 빼앗긴 농경지와 그 위에 세워진 서비스산업에 생존권이 내몰릴 수밖에 없었던 우리 현대사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평생 가슴에 남아 있는 어르신의 응어리가 풀리고 그 지인과 함께 손을 맞잡아 상처뿐인 미군 기지촌 용주골을 일으켜 세우지 않을까.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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