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천현면(법원읍)은 곳곳이 미군부대였다. 천현면 법원리 사거리를 중심으로 의무대대 ‘캠프 어윈’이 있었고, 문화창조밸리로 바뀐 집창촌 앞에는 ‘캠프 케녹’, 농협 뒤쪽으로는 ‘캠프 스노우’가 주둔했었다. 그리고 법원초교 쪽에는 ‘캠프 워너’가, 가야리에는 ‘캠프 맥 네일’이 있었으며, 금곡리와 웅담리에도 미군 제7사단과 24사단 사령부가 자리 잡으면서 율곡 선생과 어머니 신사임당의 묘가 모셔져 있는 천현면 전 지역이 미군 기지촌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천현면은 파주시 최초의 ‘파주군 성병관리소’가 초리골 입구에 있어야 할 만큼 미군과 위안부가 많았다. 1968년 천현면의 인구는 30,229명으로 농사를 짓는 농가는 1,188가구였고, 비농가는 4,008가구로 미군을 상대로 한 서비스산업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미군부대가 없었던 교하면의 경우 1968년 인구가 15,671명에 농가 2,140가구, 비농가 425가구였던 것과 비교해 볼 때 기지촌의 상업 규모와 인구의 집중을 알 수 있다. 법원읍의 현재 인구는 12,453명이다. 그런데 여기 천현면에 파주에서 처음으로 재건중학교가 설립되었다. 즉, 1961년 덕성재건중학교가 천현면 대능리 장군
한국전쟁과 함께 미군부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옛 기지촌이 벽화마을로 변신하고 있다. 칙칙했던 골목과 딱딱하기만 했던 군부대 담벼락이 친근한 모습으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쉬운 점이 있다. 벽화 소재를 신중하게 선택할 필요가 있다. 그림물감도 가능하면 친환경 페인트로 사용하면 좋을 것 같다. 물론 예산의 문제도 있어 당장 반영하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벽화 내용만큼은 미리 심의 결정했으면 좋겠다. 사진은 법원읍 웅담리 군부대 담벼락의 그림이다. 여성을 과녁에 놓고 화살로 맞춘 모습이다. 언뜻 보면 미국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또 다른 시각으로 보면 여성의 성을 상품화한 듯하기도 하다. 법원읍은 벽화 비용 750만 원을 지원했다. 우리는 ‘기지촌’ 하면 ‘미군 위안부’를 떠올린다. 성매매가 일상이었던 그곳에서 혼혈인 4만여 명이 전 세계에 입양됐다. 이제 그 군사문화를 청산하고 우리의 희망이 담긴 그림으로 수놓아지길 기대한다.
고만고만한 세 여중생이 바람 산들 부는 봄이면 진달래꽃을 손바닥으로 훑이며 봉서산 고개를 넘었다. 이렇게 한 시간 남짓 고빗길 따라 걷다 보면 도토리나무 사이로 ‘애향재건중학교’가 희미하게 보였다. “재건중학교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딸이 애향중학교에 다녔어요. 그때 생활이 어려워 저 봉서산 너머 학교에 보냈죠. 거리도 멀고 또래들의 놀림도 좀 있었던 학교여서 부모 입장에서는 사실 마음이 편하지 않았죠. 그런데도 애들은 신났던 것 같아요. 봄이면 진달래를 한 다발씩 꺾어 빈 도시락 달깍거리며 뛰어오곤 했으니까요.” 언론협동조합 파주바른신문 ‘바른체크팀’이 옛 애향재건중학교를 찾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오랜 수소문 끝에 졸업생과 학부모를 만날 수 있었지만 재건학교 출신임을 감추고 싶어하는 것이 역력했다. ‘애향재건중학교’는 주내면(파주읍) 봉서2리 봉서산 기슭에 있었다. 주내면 파주리와 연풍리는 봉서산 동쪽에, 봉서리는 서쪽에 있다. 애향재건중학교에 다니는 동쪽 마을 학생들의 등굣길은 파주초등학교 옆길을 따라 파주향교와 약수터를 지나고, 봉서산 중턱 ‘아미재’ 고개를 넘는 것이었다. 애향재건중학교의 설립연도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졸업생과 학부모의 말을
1957년 파주 주내면(파주읍) 파주리에서 태어난 이영순(미국 이름 Dianna Hould) 씨가 법원읍 법원리의 옛 마을 사진을 공개했다. 이영순 씨는 1958년 7월 미국 몬타나 주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젊은 부부에게 입양됐다. 당시 이 씨의 입양서류에는 ‘이순자’라는 이름과 서명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순자 씨가 친생모일 것으로 짐작된다. 이영순 씨는 지난해 봄 입양서류에 있는 주소지 마을을 찾아 어머니의 생사를 확인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영순 씨가 공개한 사진은 1958년 천현면 법원리 미군 제1기갑 15의료대대에 복무했던 이 씨의 양부모 삼촌이 촬영한 것이다. 현장사진연구소가 이 사진을 현장 확인한 결과 법원2리 온양동 방향으로 판단된다.
“조용필이 고등학교 때 장파리 ‘DMZ클럽’에서 수습밴드로 있었어요. 그러다가 잠시 ‘블루문홀’을 왔다 갔다 했지만 주로 ‘DMZ클럽’에 있었죠. ‘라스트찬스클럽’에는 없었어요. 거기는 가수 정훈희 남편 김태화밴드가 있었습니다.” 1960년대 장파리와 용주골 등 기지촌을 무대로 주먹 생활을 했던 김 아무개(73) 씨의 증언이다. 음악에도 소질이 있던 김 씨는 60년대 장파리 미군클럽을 제집 드나들듯 했다. “당시 장파리는 파평면이 아니라 적성면이었어요. 임진강 건너에 미군부대가 있어서 일과를 마친 미군들이 저녁이면 몰려나왔죠. 미군클럽이 ‘DMZ클럽’, ‘블루문홀’, ‘메트로홀’, ‘럭키바’, ‘라스트찬스’, ‘나이트클럽’ 등 6곳이 있었어요. 클럽마다 모두 전속 밴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죠. 내 기억에는 DMZ클럽에 앳킨스밴드, 블루문홀에 혹부리밴드, 라스트찬스에는 4인조로 구성된 김태화밴드가 있었습니다. 김태화밴드는 나중에 밴드 이름을 ‘라스트찬스’로 바꿨습니다.” “조용필은 18살 때인가 DMZ클럽에 잠깐 왔다가 며칠 못 있고 갔어요. 깜보음악(흑인 락)을 배우러 왔던 것 같아요. 아마도 그때 조용필이 장파리를 떠나 용주골 세븐클럽에서 기타 연주를 하다
건설현장 업자에게 수차례에 걸쳐 돈을 받은 혐의로 1심과 항소심에서 유죄를 받고 상고한 지역신문 김 아무개 발행인과 내 아무개 발행인에 대해 대법원이 16일 상고를 기각했다. 파주지역에서 신문사를 각각 운영하고 있는 두 발행인은 2013년 5월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1심 재판에 넘겨져 항소심과 대법원까지 약 4년여 재판을 받아왔다. 대법원의 최종 판결로 김 아무개 발행인은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내 아무개 발행인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두 발행인은 정기간행물의 등록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신문발행인을 맡을 수 없게 됐다.
파주바른신문이 집중보도하고 있는 헤이리예술마을 등 농어촌민박 운영 실태에 대해 파주시가 특정감사를 실시한다. 3월 말까지 실시되는 이번 감사에서는 농어촌정비법, 건축법, 공중위생법 등 위반 여부와 담당부서의 업무 관리를 살펴볼 예정이다. 현재 파주시에는 농어촌정비법에 따라 신고 등록된 민박사업장은 헤이리예술마을 8곳을 비롯 총 87곳이 있다. 이중 탄현면이 34곳으로 가장 많고 법원읍 22, 파평면 11, 적성면 8, 파주읍 4, 운정동 2, 교하, 조리, 월롱면에 각각 1곳씩이다. 농어촌민박사업은 농어촌지역 또는 준농어촌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이 연면적 230㎡ 미만의 단독주택을 이용해 운영할 수 있으며,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제3조에 따른 수동식 소화기를 구비하고 각 객실마다 ‘단독 경보형 감지기’를 설치하여야 한다. 민박사업은 주민이 직접 거주하는 주택을 농어촌민박으로 이용하기 위해 증개축을 할 경우 총사업비 80% 이내의 농업종합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 다만 지원 대상자는 농업인인 경우에만 가능하다.
파주시의회 이평자 의장이 재판을 받는다. 최영실 전 의원이 위증 혐의로 고소를 했기 때문이다. 파주바른신문은 최 전 의원이 이용남 기자를 만나게 된 과정을 3차례 나누어 연재한다. 첫 번째 글에서는 사실관계만 전달하고 분석이나 판단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의 존칭은 생략하기로 한다. 이용남이 최영실을 처음 알게 된 때는 2014년 6월 지방선거 무렵이다. 당시 이용남이 최영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민주당 비례대표 경선에 나선 최영실이 과거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파주시의원을 지냈었다는 것과 문산에서 유치원을 경영하고 있다는 정도였다. 최영실은 시민단체 활동을 하고 있는 임경란과 비례대표 경선을 통해 파주시의원에 당선됐다. 지방선거가 끝난 6월 18일 민주당 이종욱 노인위원장이 파주신문 내종석 발행인에게 최영실로부터 200만 원을 받았다는 양심선언 취재를 요청했다. 당시 파주신문은 협동조합 설립 준비를 위해 사무실을 금촌의 옛 돌고래수영장으로 이전했다. 이 사무실에서 임경란과 내종석이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용남은 이종욱의 양심선언 영상인터뷰를 담당했다. 이용남은 인터뷰 내용이 일방적이어서 6월 20일 오후 6시 22분 최영실에게 “
헤이리예술마을이 흔들리고 있다. 소득이 지출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밖에서는 문화지구가 너무 상업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치권은 행정기관이 재정을 지원해야 한다거나 예산 지원을 할 필요가 없다는 엇갈린 의견을 내놓는다.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 박용수 의원(파주2)은 지난해 8월 헤이리문화지구에서 열린 ‘파주 헤이리마을 미래비전 모색 정책토론회’에서 “경기도 유일의 문화지구인 헤이리예술마을이 ‘경기도 문화지구 관리 및 육성에 관한 조례’상의 지원근거가 있음에도 경기도와 파주시가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제대로 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반면, 파주시의회 더불어민주당 손배찬 의원은 지난해 12월 새해 예산을 심의하면서 “헤이리예술마을이 너무 상업화되고 있다. 지역주민들과의 소통도 원활하지 않다. 이런 마당에 파주시가 예산을 지원하는 것이 어떤 기대 효과가 있는가?”라며 박용수 의원과 엇갈린 의견을 내놓았다. 사단법인 헤이리예술마을 한상구 상임이사는 “헤이리가 상업화되고 있는 건 맞다. 문화시설에서 나오는 소득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헤이리 브랜드를 활용한 농산물 판매 등 여러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갤러리 등
파주시의회 이평자 의장이 위증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의 공소 사실에 따르면 ‘이평자 의장은 2014년 6월 28일 최영실 전 의원을 지역신문 이용남 기자에게 소개한 후 최영실 전 의원의 남편에게 현금 100만 원을 받아 이용남 기자에게 건넸다. 이용남 기자는 이 돈봉투를 다음 날인 29일 오후 8시 이평자, 최영실을 금촌의 한 카페에서 만나 돌려주었다. 그러나 이평자는 최영실과 헤어진 오후 9시 16분께 현금인출기에서 100만 원을 빼 이용남에게 주었음에도 최영실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 증인으로 나와 그런 사실이 없다고 증언했다.’라고 적시했다. 검찰은 또 ‘이평자 의장은 이용남 기자의 승용차 사고 사진을 문자로 받지 않았음에도 자신도 그 사진을 받았고, 다른 의원들도 받았다며 허위 증언을 했다.’라며 위증죄로 기소했다. 이에 대해 파주바른신문 이용남 기자는 “최영실 전 의원이 이평자 의장을 통해 돈봉투를 보냈으나 그 다음 날 최 전 의원을 금촌역 앞 카페에서 직접 만나 돌려줬고, 최 전 의원과 헤어진 후 이평자 의장에게 돈을 받았다는 검찰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영실 전 의원은 2016년 3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용남 기자에
국방부의 훈련장 확장 사업으로 마을 전체가 사라진 법원읍 오현리에 파주시의원의 마을 출입통제 펼침막이 내걸렸다. 2006년 때의 일이다. 주민들의 정치인 불신은 극에 달했다. 주민들의 400여 년 된 마을 지키기 호소를 정치인들이 외면했기 때문이다. 무건리훈련장은 미군과 한국군이 함께 사용하는 1,000만 평 규모의 공용훈련장이다. 무건리훈련장 확장은 몇 차례 거듭됐다. 그때마다 마을이 사라졌다. 직천리 마을과 삼박골에 있던 직천초교가 인근 마을 오현리로 이전했다. 천연기념물 제286호인 물푸레나무는 훈련장 안에 그대로 남아 있으나 시민들의 접근은 어려운 상태다. 국가안보를 위해 이렇게 쫓겨난 마을 사람들과 오현리 마을 180여 가구는 훈련장이 또다시 확장되면서 법원읍 가야리로 이주했다. 주민들은 당시 무건리훈련장확장대책위를 만들어 저항했다. 목판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묘비를 지고 국방부 정문 앞에서 연일 집회 시위를 벌였다. 당시 경기도지사에 출마한 민주노동당 김용한 후보는 토론회에서 훈련장 확장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파주지역 정치인은 주민의 편에 서지 않았다. 오히려 집회 현장에서 주민 50여 명이 파주경찰서로 연행됐는데도 파주시의회 의장은
“문화시설을 정상 운영하려면 큐레이터 등 직원 월급을 줘야 하잖아요. 그러려면 한 달에 3천만 원 정도는 수입이 있어야 돼요. 그런데 알다시피 그런 돈이 들어오나요? 웬만한 갤러리 거의 다 문 닫았어요. 그래도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견뎌보려는 거예요. 그래서 숙박업이 불법인 줄은 알지만 그렇다고 또 안 할 수도 없잖아요. 이런 사정을 좀 이해해줬으면 좋겠어요.” 헤이리예술마을에서 영화관 등을 운영하고 있는 한 주민의 하소연이다. 주민은 또 “나는 예술가는 아니지만 이곳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니 문화예술인이 마음 놓고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건물을 팔고 떠나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문화지구 지정도 사실 허울뿐입니다. 그동안의 재산세 지원 혜택도 기간이 만료돼 지난해에는 개인 돈 400만 원을 내야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숙박업을 담당하고 있는 파주시청 공무원의 하소연은 이렇다. “헤이리예술마을의 불법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단속 방식으로는 좀 어렵습니다. 단속에 걸리면 앞으로 개선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빨리 위반 확인서를 달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