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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군 남편 추억 깃든 ‘리비교’와 함께 떠난 미군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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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미군 기지촌 여성이 1960년대 중반 임진강 리비교를 배경으로 찍은 모습이다. 1936년생인 이 사진 속 여성은 얼마 전 세상을 마감했다. 마을에서 깜둥이 엄마로 불린 이 할머니는 스물여섯 살에 미군클럽과 유흥주점이 즐비한 파평면 장마루촌에 들어왔다. 파평면 장파리는  영화 ‘장마루촌의 이발사’ 촬영 장소와 가수 조용필이 클럽에서 노래를 부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할머니는 매일 술 취한 미군이 득실대는 다방과 클럽에서 낮과 밤을 보냈다. 서쪽 하늘이 어둑해지기 시작하면 임진강 리비교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리비교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이 군수물자 수송을 위해 1953년 7월 4일 건설했다.


 임진강 너머 민간인통제구역 안에는 15개의 미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는데 저녁이면 일과를 마친 미군들이 미제물건을 어깨에 들쳐 메고 리비교로 쏟아져 나왔다. 이 때문에 전국에서 양키물건을 사려는 사람들과 미군병사를 꼬셔 술집으로 데리고 가려는 포주, 클럽 여성들이 뒤섞여 리비교는 매일 전쟁터 같았다.


 할머니도 나중에 아이 아버지가 된 흑인 미군병사 ‘존슨’을 리비교 앞에서 만났다. 둘은 월셋방을 얻어 동거를 시작했다. 당시 유행했던 계약결혼이다. 그리고 1965년 아들을 낳았다. 할머니는 남편 ‘존슨’이 의정부에 있는 부대로 전출되자 아들과 함께 남편을 따라갔다.


 의정부에서의 신혼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할머니는 남편 ‘존슨’과 헤어져 다시 기지촌 생활로 아들을 키웠다. 그러나 할머니는 아들의 교육과 장래를 고민하던 끝에 아들이 열네 살 되던 해인 1979년 서울 수유리에 있는 한 입양기관을 통해 아들을 미국으로 보냈다. 할머니는 4년 전 현장사진연구소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은 “입양을 보낸 것이 아니라 유학을 보낸 것이다.”라며 아들에 대한 애정을 표시했다.


 할머니는 한국전쟁과 암울했던 가정과 사회적 분위기에 아무렇게나 내던져져 스무 살 청춘을 빼앗겼다. 20대 중반에 가까스로 찾은 작은 행복은 남편의 변심과 함께 깊은 상처로 남았다. 아들을 미국으로 입양 보낸 뒤 할머니의 외로움은 심장병과 우울증으로 이어졌다. 할머니는 남편과 아들을 만났던 장마루촌으로 돌아와 여생을 보내기로 했다.


 남편과 아들이 떠난 장마루촌은 스물여섯 살에 경험한 휘황찬란한 거리 풍경은 아니었지만  클럽과 다방 등 골목의 모습은 그대로였다. 할머니는 제일 먼저 임진강 리비교를 찾았다. 미군병사였던 남편과 함께 임진강으로 내려가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생생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장마루촌을 다시 찾은 할머니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전염 초기인 지난 2월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는 생전 인터뷰에서 “세상물정 제대로 몰랐던 그 나이에 경험했던 장마루촌은 여전히 무섭고 두려운 기억으로 남아 있지만 그래도 막막한 절망의 그 시대에 내던져진 사람들이 서로의 아픔을 나눌 수 있어 좋았다.”라고 회상했다.


 리비교에서 미군병사를 만나 연인이 된 미군 위안부의 임진강 기억은 한 장의 흑백사진을 남긴 채 먼 길을 떠났고, 한국전쟁 때 건설된 임진강 리비교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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