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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성 작가 고형권의 “이철규 열사를 위한 행진곡”


조선대학교 교지 편집장이었던 이철규 열사가 1989년 5월 전남 광주 저수지에서 참혹한 모습의 변사체로 발견됐다. 검찰은 ‘실족에 의한 익사’라고 발표했지만 손목에는 묶였던 자국이 있었고, 다리에도 찔리고 긁힌 상처들이 있었다. 북한과 관련된 글을 실었다는 이유로 수배를 받고 있던 그에게는 현상금과 특진이 걸려 있었다. 

 1964년 전라남도 장성에서 태어난 이철규 열사는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었다. 1982년 조선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입학해 학생운동을 하던 그는 학교에서 제적당했으며, 1986년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1987년 6월 항쟁이 일어나면서 가석방돼 1988년 학교에 복적했다 

 이철규 열사는 1989년 1월 조선대학교 교지인 ‘민주조선’의 편집장을 맡았는데, 교지에 실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련 내용이 문제가 돼 수배령이 내려졌다. 숨어지내던 그는 5월 3일 택시를 타고 이동하던 중 경찰관의 검문을 피해 달아났는데, 그것이 마지막 모습이었다. 

 최근 ‘리영희재단’ 이사를 맡은 고형권 작가에게 이철규 열사를 기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탁했다. 한양대 학생운동권 출신인 고 작가는 흔쾌히 승낙하고 서대문형무소로 달려갔다. 그 역사적 장소에서 젊은 시절을 회상하면서 감정을 억누르며 부르는 고 작가의 ‘임을 위한 행진곡’은 열사의 귀에 가 닿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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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파리 이야기에 유명인과 술집이 그렇게 중요한가? 1960년대 파평면 장파리 현대사를 얘기하다 보면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가수 조용필이다. 조용필이 고등학교 때 장파리로 가출해 미군 클럽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했다는 것이다. 그 클럽은 파주시가 발간한 ‘장파리 마을이야기’에 나오는 ‘라스트 찬스’이다. ‘라스트 찬스’ 이름의 진실은 지난 호에서 언급했으므로 생략한다. 파주바른신문은 2021년 5월 한겨레신문과 함께 조용필 씨가 파평면 장파리 미군 클럽에서 노래한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 조용필 씨 매니저를 접촉했다. 그런데 매니저는 공식적으로 얘기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한겨레도 흑역사로 치부될 수 있는 과거를 뚜렷한 사실관계 없이 지역이나 특정 목적 홍보에 이용하는 건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런 얘기는 조용필 씨와 개인적으로 친한 사람이 술자리 정도에서나 나눌 얘기라고 덧붙였다. 파주시가 발간한 ‘장파리 마을이야기’는 가수 조용필 씨가 ‘라스트 찬스’에서 노래를 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마을이야기에 왜 술집과 유명인들을 앞세우는지 알 수 없다. 조용필 씨가 장파리에서 노래를 했든 안 했든 그것이 왜 마을이야기의 중심에 있어야 하는 걸까? 한국전쟁 이후 미군의 본격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