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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여성민우회 윤숙희 대표의 “김귀정 열사를 위한 행진곡”


1991년 5월 25일 대한극장 앞 진양상가 골목은 폭력 경찰에 쫓긴 시위대가 넘어지면서 아수라장이 됐다. 사복 체포조 백골단이 시위대가 빠져나가려는 골목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넘어진 시위대를 무차별 구타했다. 그 골목에 25살 김귀정 열사가 있었고, 그때 세상을 떠났다.


 1966년 서울에서 1남 2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난 김귀정 열사는 부모가 노점상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어려운 가정환경에서도 악착같이 노력해 1985년 한국외대 용인캠퍼스에 입학했다. 그러나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학교를 중퇴하고 자동차 정비소에 취직해 부모님을 도우면서 다시 공부해 1988년 성균관대 불어불문학과에 들어갔다.


 1991년 당시, 김귀정 열사와 함께 대한극장 골목에 갇혀 사복경찰의 폭력을 목도한 파주여성민우회 윤숙희 대표가 김귀정 열사 추모 30주기를 맞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윤 대표는 골목에서 어떤 남자의 도움을 받아 맨발로 도망쳐 집에 왔는데, 바로 그 골목에서 김귀정 열사가 숨졌다는 방송을 보면서 숨이 멎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사진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기록한 현장사진연구소 이용남 사진가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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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시장님의 용기와 도덕적 리더십 덕분에...” “김경일 파주시장님께서 취임 이후 누구도 쉽게 하지 못했던 성매매집결지 폐쇄를 과감히 추진하였고, 시장님의 용기와 도덕적 리더십 덕분에 파주는 정의롭고 건강한 도시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14일 자신을 문산이 고향인 파주시민 김미숙이라고 소개한 여성이 파주에서 개최된 ‘타운 홀 미팅’에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한 말이다. 이 여성은 “우리는 국가의 아픔을 함께 짊어지며 인내하고 살아왔다. 지난 70년 동안 시민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또 하나의 고통이 이어져 왔다. 바로 미군 주둔과 함께 생겨난 용주골 성매매집결지이다.”라며 성매매집결지에 경찰이 상주할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김경일 파주시장도 대통령에게 업소 70곳을 200곳으로 부풀려 보고하며 경찰 지원 필요성을 주장했다. 파주시민 김미숙 씨는 누구도 하지 못한 집결지 폐쇄를 추진했다며 김경일 시장의 용기와 도덕적 리더십을 언급했다. 그렇다면 역대 시장 군수들은 왜 대추벌 성매매집결지 폐쇄를 추진하지 못했을까? 김경일 시장처럼 용기와 도덕적 리더십이 부족했던 것일까? 1988년과 1995년 자치단체장을 역임한 파주 토박이 고 송달용 시장은 생전 인터뷰에서 ‘용주골과 대추벌의 성산업 카르텔이 파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