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정치인들의 ‘미군공여지 무상반환’ 발언이 잇따르고 있다. 박정 국회의원, 박찬일 파주시의원, 그리고 내년 지방선거 출마예정자 우춘환 전 경기도의원 등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주장하고 있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파주는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민간인통제와 재산권 제약 등 생활 불편이 이어지고 있다. 눈앞에 보이는 임진강 건너 고향 마을과 농지는 주인도 모르게 군 주둔지와 훈련장으로 변했다. 그렇게 미군공여지가 된 것이다.
공여지에는 미군이 배타적 사용권을 갖고 있는 전용공여지와 훈련장 안전지대, 송유관 등의 지역권 공여지와 임시공여지가 있다. 파주에서는 ‘불스아이1’의 스토리사격장 215만 평을 비롯 캔사스, 오클라호마, 뉴멕시코, 텍사스 사격장 등에 2천5백94만여 평과 ‘불스아이2’에는 미2사단 탱크부대 훈련장인 다그마노스훈련장 175만여 평, 파평 두포리의 도하장이 미군에 공여됐다.
주둔지로는 캠프 하우즈(44공병대대), 에드워드(82전투지원중대), 자이안트(1/506대대), 게리오웬(5/17항공대대), 그리브스(1/506대대), 스탠톤(5/17수색대대 DEF중대), 보니파스(유엔사 경비대대), 찰리블럭(AFKN중계소), 프리덤 브리지(숙소), 캠프 리버티벨 등에 65만여 평이 공여됐다.
1996년 파주바른신문은 창간 준비와 함께 미군공여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자신도 모르게 미군에 공여된 땅을 찾기 위해 농민들과 함께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토지문서를 들고 임진강을 건넜다.
미군 전용공여지인 스토리사격장을 비롯 크고 작은 훈련장 대부분이 한국전쟁 피란 당시 사유지였다.
파평 주민을 중심으로 한 미군공여지 반환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당시 파주를 비롯 의정부, 동두천, 춘천, 원주, 인천, 서울, 매향리, 평택, 대구, 군산, 부산 등 전국에서 반환을 요구하는 외침이 터져 나오면서 1997년 ‘미군기지반환운동연대’가 결성됐다.
2002년 경기북부의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하는 연합토지관리계획이 발표됐다. 이에 따라 파주에서는 8개 기지와 4개의 사격훈련장이 반환 계획에 포함됐다. 경기북부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2005년 3월 8일 ‘경기북부지역 미군문제해결을 위한 범시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미군기지 무상반환 10만인 청원운동을 시작했다.
파평 주민들은 관광버스를 타고 서울의 미국대사관 앞으로 상경 시위를 갔다. 스토리사격장 진입을 시도하고, 미군 탱크의 다그마노스훈련장 진입을 몸으로 막았다. 청년회장이 경찰에 연행됐다. 파주의 현장사진연구소는 주민들의 모습을 담아 의정부역 광장을 시작으로 미국 뉴욕, 일본 오키나와 등 국회에서 사진전시회를 통해 고발했다.
그렇게 미군공여지 무상반환운동을 전개할 때, 정치인은 아무도 없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