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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술 취한 거리, 그 안의 절망 장마루촌

“우리 영감도 농약 먹고 죽었어요. 저기, 저 집 아줌마도 그렇고, 그 윗집 내 친구도 농약을 먹었어요. 요기, 이 집은 세 식구가 모두 농약을 먹고 자살했어요. 아휴… 장파리에 농약 먹고 죽은 사람이 열도 넘어요. 열이 뭐야, 스무 명도 넘을 거야.” 파평면 장마루촌 김인예 할머니의 지우고 싶은 기억이다.


 파주바른신문은 이재명 경기지사의 ‘특별한 희생’과 ‘특별한 보상’이 어떤 기준으로 얼마나 공정하게 이루어질 것인지를 살펴보고 있다. 그 의미로 파주의 9개 지역 38개 기지촌의 상처와 아픔을 현장사진연구소와 미 육군 제19범죄수사대의 자료 협조를 받아 연재한다.



 한국전쟁이 멈춘 1960년대 장마루촌은 술 취한 미군과 팔짱을 낀 여성들로 하루종일 북적였다. 해가 넘어가면 논밭 일을 마친 주민들도 호미와 낫을 손에 든 채 쿵작거리는 미군클럽 안을 곁눈질로 들여다보며 걸음을 재촉하는 게 장마루촌 사람들의 일상이었다.


 훈련 나온 미군에게 술 등을 팔아 생계를 이어오던 정 아무개(당시 37세) 씨는 극심한 생활고를 비관해 아내 배 아무개(30) 씨, 7살 아들, 4살 딸 등 가족과 함께 1967년 2월 13일 오전 8시 농약을 먹고 자살했다. 배 씨 가족은 주민들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모두 숨졌다.


 1970년 5월 20일 오후 8시 40분께 미군클럽 ‘블루문홀’ 앞을 지나가던 마을 주민 권 아무개(당시 34세) 씨가 술에 만취한 미군 제2사단 23연대 1대대 C중대 소속 ‘캐슨’ 병장 등 흑인병사 3명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권 씨는 이빨 4개가 부러지는 등 온몸에 상처를 입었다.  흑인병사들은 임진강 리비교 검문소로 도망쳤다. 권 씨의 폭행 소식을 들은 마을 주민 10여 명이 미군을 추격했다. 검문소를 지키던 미군이 주민들을 향해 권총 3발을 발사했다. 30여 명으로 불어난 주민들은 검문소로 돌을 던지며 항의했다. 미군도 20여 명으로 늘어났다. 주민과 미군의 투석전은 5시간 동안 계속됐다. 이 싸움으로 택시(경기 영 1-1175) 2대와 미군 트럭 2대가 부서졌으며 도로변 상가 등 가옥 10여 채의 창문과 지붕이 파손됐다. 미군에게 폭행당한 후 장마루촌에서 농사를 짓고 살던 권 씨는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농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 위안부와 동침하던 미군이 홧김에 아궁이 연탄불을 빼 방안의 옷장에 넣어 옷과 옷장을 모두 태워버린 사건도 있었다. 1963년 1월 7일 밤 11시 15분께 미 제1기갑사단 제8기갑연대 본부중대에 근무하던 마이클 상병이 함께 동침 중이던 정 아무개(21) 씨가 시간이 늦었으니 빨리 부대에 들어가라고 한 말에 격분해 밖으로 뛰쳐나가 아궁이의 연탄불을 빼 들고 들어와 옷장에 던져넣은 것이다.


살인사건도 있었다. 1970년 11월 5일 장마루상점 허 아무개(35) 씨 집에 세 들어 살던 미군 위안부 이 아무개(26) 씨가 침대에 발가벗겨진 상태로 숨져 있는 것을 평소 알고 지내던 동생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동생 서 아무개(23) 씨는 경찰 진술에서 “언니가 숨지기 전날 밤 9시쯤 키 170cm 정도의 점퍼 차림 미군과 방에 들어가는 것을 봤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언니 방이 밖으로 자물쇠가 채워져 있어 외출한 것으로 알고 찾아다녔는데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어디 멀리 간 것으로 생각하고 돌아왔다가 오후 4시 40분쯤 언니 집으로 다시 가봤다. 그런데 여전히 방문이 잠겨있음에도 고무신은 그대로 있어 이상한 생각이 들어 망치로 자물쇠를 부수고 방에 들어가 보니 언니가 발가벗겨진 상태로 누워 있었는데 외부 상처는 없었고 코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라고 했다.



 서울지검 의정부지청 백형주 검사는 사건 발생 30일만인 12월 5일 미 제7사단 32연대 1대대 ‘도일 C 마티니’ 상병(22)을 체포해 “화대 시비 끝에 이 씨의 목을 눌러 살해했다.”라는 자백을 받아내고 살인 혐의로 미군 당국에 신병확보를 요구했다.


 미군 철수 이후 인구가 계속 감소하던 파평면사무소는 최근 감소세가 멈추고 면민 1명이 증가했다며 기쁨과 축하의 보도자료를 언론에 제공했다. 각 언론매체도 단 한 명의 전입 소식을 아주 특별한 비중으로 시민들에게 전했다. 그러나 인구가 줄어드는 파평면에 행정복지센터를 새로 지을 필요가 있냐고 반문한 언론도 있었다.


 천주교 장파공소 골목길을 따라 내려가면 작은 개울이 나온다. 그 곳에서 만난 90세 노인은 “장파리 사람들은 농약으로 죽고 금파리는 지뢰를 밟아 다리가 잘려 죽은 사람들이 수두룩하다.”라며 분단의 아픔과 상처를 전하고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특별한 희생과 특별한 보상이 궁금하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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