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낮 12시 50분께 월롱면 건축자재 도장업체에서 화재가 발생해 공장 3개 동을 모두 태우고 3시간여 만에 진화됐다. 지역구가 월롱인 정치인들도 현장에 도착했다. 한 정치인은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진화 현장을 누비며 휴대폰으로 영상과 사진을 찍었다. 현장 지휘관은 난감한 표정이 역력했다. 폭염 속 땀 범벅된 소방대원이 여기저기 탈진해 앉아 있고, 의용소방대원들과 공무원, 주민들이 생수와 얼음을 나눠주며 힘내라고 응원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런 시간에 정치인은 접근이 차단된 현장에 들어가 사진을 찍어댔다. 의원님, 그건 우리가 찍어도 되는데...
“저기 저 건물이 내가 지은 거야. 요기, 미군 댄스 홀에서 일하는 여자들이 미군들하고 같이 술 먹고 춤추고 하다가 들어가는 방인데 ‘홀 하우스’라고 불렀지.” 파평 장파리에서 목수 일을 한 손진규(96) 할아버지가 동시에 침대 30개를 사용할 수 있었다는 미군 클럽 ‘럭키 바’를 가리키며 한 말이다. 일제강점기의 공창제도가 폐지된 것은 1947년 11월 14일이다. 그런데 한국정부는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군부대 안에 ‘특수위안대’를 설치했다. 마산에 연합군 위안소 5개소가 허가되었고, 서울에 3개 소대, 강릉에 1개 소대, 춘천, 원주, 속초 등에 총 79명의 위안부가 배치됐다. 연합군 위안소는 1954년 모두 폐쇄됐다. 그러자 장기 주둔하게 된 수만 명 미군 병사들의 성욕 해소가 미군기지 주변의 주요한 문제가 됐다. 1957년 7월 유엔군 사령부가 일본 도쿄에서 서울로 이전하면서 한국정부와 미군은 서울에 접객업소 12개소, 인천과 부산에 댄스홀 14개소를 위안 시설로 지정했다. ‘윤락행위 등 방지법’이 1961년 11월 제정됐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보건사회부, 법무부, 내무부 합동으로 성매매 단속을 면제해주는 이른바 ‘적선지구’ 104개소를 지정해 경
‘지난 29일 동안 19명의 캠프 게리오웬 군인들이 용주골 클럽에서 성병에 걸렸다. 성병 감염 클럽을 공개한다.’ 1960년대 파주 미군부대 정문에 걸려 있던 성병 감염 안내문 내용이다. 나무로 제작된 이 안내판은 숫자를 교체할 수 있도록 돼 있어 당시 성병 감염이 심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안내판에 공개된 미군 상대 업소는 ‘나이아가라’, ‘뉴 서울’, ‘세븐 업’, ‘플라밍고’, ‘진주’, ‘킹스타’, ‘로망스’, ‘프리 버드’, ‘퀸 비’ 등 대부분 파주읍 연풍리 용주골 지역 클럽으로, 업소명이 구체적으로 표기돼 있다. 정문에는 또 ‘서쪽 골목에는 등록된 기지촌 여성 500여 명과 등록되지 않은 여성 300여 명이 있다. 그들은 예외 없이 모두 성병에 걸렸거나 최근에 성병에 걸린 적이 있다. 따라서 이들이 당신들을 쫓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당신들이 이들 기지촌 여성 중 한 명을 이용(관계)한다면 성병에 감염될 것이다. 당신 가족에게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당신은 남은 생애 동안 불구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성병 감염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이 경고문 중 ‘등록된 기지촌 여성과 등록되지 않은 여성’이 나오는데, 이를 미군 측이
“한국전쟁 전에는 나룻배로 임진강을 건넜죠. 그리고 공병대 부교가 설치됐는데 홍수에 떠내려갔고, 그래서 다시 철 기둥과 나무로 만든 가교를 세웠는데 전쟁이 일어난 거예요. 그때 미 24사단 공병대 소속 리비 중사가 인민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임진강 가교 북단을 폭파시켰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 후에 대전에서 죽었다던가... 그 건 잘 모르겠어요. 여하튼 ‘리비교’가 건설되기 전에 케이블카(곤돌라)를 이용해 보급품을 수송했어요.” 임진강 리비교에서 보초를 섰던 손 아무개(96) 옹의 기억이다. 손 옹은 고향이 개성이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군에 입대해 정규 군사훈련을 받았다. 손 옹은 여수, 순천 사건 진압과 지리산 공비 토벌에 나서기도 했으며 1956년 하사관으로 제대했다. 손 옹은 육군 1사단 소속으로 1953년 리비교가 세워지기 전 임진강을 건넜던 나룻배와 가교, 곤돌라를 모두 직접 경험했다고 한다. 파주시는 현재 105억 원을 들여 ‘리비교 관광자원화’ 보강공사를 추진하고 있다. 또다시 ‘리비교’의 이름으로...
“저기 저 돌담의 의미가 뭐예요?” 지난 6월 해외입양인들이 파주시가 조성한 ‘엄마 품 동산’을 방문했을 때 담당 공무원에게 질문한 내용이다. 담당 공무원은 “글쎄요. 그냥 만든 것 같은데요.”라고 답했다. 파주시가 해외입양인을 위해 5억 원을 들여 만든 엄마 품 동산이 9월 12일 준공된다. 사진은 현재 엄마 품 동산에 설치된 돌담 조형물이다. 철 구조물 안에 든 돌을 살펴보면,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잡석일 뿐이다. 해외입양인들이 이 돌담 조형물의 의미를 물었던 것이다. 파주 11개 읍면 중 9개 지역에 미군 기지촌이 있었다. 미군 위안부가 7,000여 명이었고, 확인된 혼혈인도 200여 명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문산읍 선유리 개울, 광탄면 신산리 개울, 법원읍 갈곡천과 직천 개울, 파주읍 연풍리 개울, 파평면 임진강 여울목과 마산리 개울 등의 자갈로 철 구조물을 채웠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랬더라면 해외입양인들에게도 의미있는 답변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이라도 그 의미가 담길 수 있기를...
“몰라요. 거기 문 닫힌 지 꽤 오래됐어요. 배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거기가 쉼터라고 그러는 거 같던데... 그 쉼터에서 누가 자전거도 빌려주고 관리도 한다고 그랬는데 누군지는 몰라요. 그냥 저렇게 내내 걸어 잠그고 있는 거예요. 쓸데없이 돈만 처들인 거죠. 여기에 무슨 도둑이 있다고 안전 마을을 만들어요...” 29일 파평 장마루촌에서 만난 노인의 얘기다. ‘쉼터’는 파주시가 2015년 파평면 장파리에 4억8천만 원을 들인 ‘장마루촌 안전마을 만들기’ 사업 중 하나이다. 황포돛배 모양을 딴 ‘쉼터’ 입구에는 ‘마을 역사 전시’, ‘마을 안내’, ‘어르신 행복 사진 촬영’, ‘마을 사업 기획’, ‘마을 순찰’ 등을 하겠다는 안내판을 붙여놓고 있다. 그런 ‘쉼터’가 개점휴업에 있다. 파주시는 현재 법원읍과 파주읍 용주골에 이와 비슷한 사업을 또 추진하고 있다. ‘장마루촌 안전 마을’ 관리 주체는 다음과 같이 각각 나뉘어 있다. 안전쉼터-장파1리 새마을부녀회 안전센터-장파1리 청년회 쌈지공원-장파1리 개발위원회 청소년 쉼터-장파2리 개발위원회 마을공동텃밭-장파리 남녀 새마을회
한국전쟁 중 북한군, 중국군 전사자 유해가 묻힌 적성면의 한 야트막한 산을 우리는 ‘적군묘’라 부른다. 파주시는 이곳에 기념관을 세우고 판문점, 도라산전망대 등 비무장지대 관광 자원을 중국군 묘역과 연계하는 관광벨트화를 ‘민선7기 읍면동 주요 추진계획’에 발표했다. 중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는 현재 중국군 유해가 한 구도 없다. 지난 2014년 3월 28일 박근혜 정권이 유해 398구를 중국으로 송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군 유해만 남아 있는 전사자 묘역을 중국인 관광객이 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냉전시기 대립과 군사문화적 관점에서 붙여진 ‘적군묘’를 이제는 ‘한국전쟁 북한군 전사자 묘역’으로 불러야 하지 않을까? 북한과 미국이 미군 유해 공동발굴에 합의했다. 판문점과 가장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탄현면 법흥리 약산골 모습이다. 이 지역에 140가구가 살았었다. 지금 이 자리에는 신세계 첼시 아울렛이 들어서 있고, 산기슭에는 짓다 만 10여 동의 건축물이 십수 년 방치된 채 흉물스러운 뼈대를 드러내고 있다. 노태우 정권은 1989년 남북한 교류 협력의 장을 마련한다며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법흥리 일대 규모 168만 1천 평에 2,918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평화시 건설 구상’의 일환인 이른바 통일동산 조성을 추진했다. 당시 지역 주민들은 크게 반발했다. 약산골 집집마다 원인 모를 불이 났다. 결국 주민들은 강제로 쫓겨났다. 그리고 그 자리에 지금 첼시 아울렛, 러브호텔, 먹거리촌 등이 들어서 있다. 정부가 추진한 통일동산은 오두산 전망대 하나 세우고 백지화됐다. 정부가 통일의 이름으로 원주민의 땅을 강제로 빼앗아 개인에게 넘겨준 꼴이다. 최종환 파주시장 1호 공약인 ‘통일경제특구 조성’이 추진된다. 사실 ‘통일’을 빼면 그냥 ‘경제특구’이다. 경제특구를 좋아할 사람은 누구일까? 그냥 국제공단 하나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통일경제특구는 분단이 전제되는, 또 다른 의미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최종환 시장은 검단사 정상에 올라 사방을
국군기무사령부가 시끄럽다. 촛불을 탱크로 짓밟겠다는 계엄령 문건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에서 수사지시를 내렸다. 기무사를 어떻게 해야 할까? 국민적 관심이 높다. 기무사 개혁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해체 요구까지 다양하게 나온다. 사진은 파주에 있는 기무부대 신고 안내판이다. 페인트칠이 다 벗겨진 철책 그림 아래로 간첩, 대테러, 군사기밀을 제보하라며 신고 전화가 적혀 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지휘관을 흔들 수 있는 ‘병영부조리’가 하얀색 테이프로 가려져 있다. 보안사 그 이름으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며 촛불을 탱크로 짓밟겠다는 국군기무사령부가 이번에는 정말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을까? ‘병영부조리’ 제보를 슬그머니 가린 저 안내판에 기무사가 보이는 듯하다. 계엄령 문건 정말 기무사 단독 행동일까? 기무사 계엄령 문건에는 파주의 육군 2기갑여단이 동원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박하사탕 영화 촬영을 저기 저 산, 국사봉 너머에서 했는데 제작진들이 군복을 100여 벌 가져와서는 급하게 수선을 부탁하는 거예요. 군복 수선이 내 전문이라서 다리미로 각을 딱 잡아서 내주니까 다들 놀라는 눈치였어요.” 적성면 옷 수선집 신순애(68) 씨는 46년 전, 그러니까 1972년 경 서울에서 경의선 열차를 타고 문산역에 내려 울퉁불퉁 신작로를 따라 적성면으로 시집을 왔다. 곧 옷 만드는 솜씨가 좋다는 소문이 퍼졌다. 마을에 있는 군 부대장이 군복 수선을 부탁했다. 그렇게 세탁소를 차렸다. 말이 세탁소이지 안 하는 게 없었다. 자수를 배워 군복 명찰을 새기기도 했고, 군번을 잃어버려 영창을 가게 생겼다며 눈물짓는 장병이 안타까워 서울에 가서 쇠막대기에 새겨진 활자를 구해와 망치로 두들겨 군번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돈 많이 벌었죠. 그런데 이제 군복 수선은 거의 없어요. 명찰 수입도 아주 짭짤했는데 찍찍이 명찰이 나오고서는 일감이 없는 거예요. 예전에는 외출복, 전투복, 작업복 등 군복마다 명찰을 달아야 했거든요. 그런데 찍찍이가 나오고부터는 명찰 한 개 가지고 여기저기 다 쓰니까요” 신순애 씨는 영화배우 설경구가 나오는 ‘박하사탕’ 비디오를
하늘이 참 맑다. 봉서산에 올랐다. 일제강점기 파주군청과 경찰서가 있었던 문산을 앞에 놓고 북한 송악산을 찍는다. 경기 5악 중 하나인 송악산은 송도(개성)에 있다. 경기 5악은 파주시의 감악산, 개성 송악산, 포천 운악산, 가평 화악산, 서울 관악산을 일컫는다. 개성 송악산은 높이 488m로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송악산 북쪽에는 천마산과 박연폭포가 있고, 남쪽으로는 고려의 옛 도읍인 송도에 진봉산과 용수산이 있다. 사진에서처럼 송악산을 바라보며 곧장 걸어가다 보면 문산 임진강 통일대교가 나오고, 통일촌을 지나면 판문점 경비를 맡고 있는 ‘보니파스대대’가 나온다. 이곳에서 비무장지대를 가로질러 들어가면 대성동 마을과 판문점이 나오는데 얼마 전 남북정상이 함께 걸었던 도보다리는 이곳에서 오른편에 있다. 송악산 쪽으로 바로 가려면 한라산과 백두산 흙으로 심은 소나무 쪽으로 방향을 틀어 그곳 언덕을 넘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