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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소식

‘용주골 성매매 기지촌 역사’ 앞에 ‘국가와 파주시장은 먼저 사과해야’

파주시가 성매매집결지 폐쇄에 대해 직원 교육을 실시했다는 언론보도 자료를 25일 배포했다. 파주시는 자료에서 탈성매매를 위해 20여 년간 성매매 현장에서 수많은 상담 경험이 있는 전문가를 강사로 초빙했다고 밝혔다. 강의 내용 중 성구매자와 업주의 착취, 폭력 사례가 언급됐다. 또한 “연풍리에 소재한 성매매집결지는 한국전쟁 과정에서 형성된 미군 기지촌이 미군 철수와 함께 사라지지 못하고 한국인의 성매매 공간으로 변모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파주바른신문은 파주시가 배포한 언론보도 자료를 중심으로 미군 기지촌의 형성 과정에 있어서 미군당국과 자치단체 등이 기지촌을 운영하기 위한 방편으로 지형적으로 성매매 공간을 어떻게 구획했는지, 성매매특별법 제정 이전과 이후 업주와 종사자 관계가 여전히 착취성 구조인지 아니면 동업자인지 조명하는 글을 3회에 걸쳐 연재할 계획이다. 이번 호에서는 먼저 용주골 미군 기지촌과 대추벌 성매매집결지의 형성 과정을 살펴본다.



대한민국 기지촌의 역사
우리 정부는 일제강점기의 공창제도가 인권을 유린한다며 해방 이후인 1947년 11월 14일 ‘공창제도 폐지령’을 공포했다. 그러나 정부는 우리나라의 분단 현실과 한국전쟁으로 인한 유엔군 주둔 등을 이유로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시기에 존치했던 ‘군 위안부’ 제도를 중심으로 한 ‘기지촌 성매매'를 적극적으로 관리 통제해왔다.
 
 한국전쟁에 참가한 외국군인은 1951년 약 20만 명에서 1953년 약 32만5천 명으로 증가했다. 이에 따라 젊은 외국 병사들의 성욕 관리가 주요한 문제로 떠올랐고, 특히 미국 입장에서는 전투에 지친 병사들을 위안하는 일이 전투력 유지를 위한 필수적 과제로 부각됐다. 이에 따라 정부는 특정 장소에 위안소를 설치하고 등록제 실시와 함께 위안부들에게 강제로 성병검진을 받게 하였으며, 업자와 위안부로부터 일정한 세금을 징수하는 등 공창제를 부활했다.
 
 특히 병사들의 성적 욕구 해소와 군의 사기진작 차원으로 1950년 여름 부산과 마산에 연합군 위안소 5개소가 부대 안에 허가됐고, 특수위안대는 서울지구 3개 소대에 58명, 강릉지구에 21명 등 총 79명이 일선부대 요청에 따라 출동위안을 실시했다.
 
기지촌의 형성과 발달
한국전쟁 직후 32만5천여 명에 달했던 미군은 철수를 거듭해 1960년에는 5만6천여 명으로 감소했고, 연합군을 위해 정부가 설립한 위안소는 1954년까지 모두 폐쇄됐다. 이에 따라 미군부대 주변에 이른바 기지촌이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1957년 일본 도쿄에 있던 유엔군사령부가 서울로 이전하면서 병사들의 외출 외박이 허용돼 기지촌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휴전 이후 기지촌의 유형은 미군당국이 직접 기지촌의 중심 지역을 설정해 관련시설을 설치하고 그 주변으로 미군 위안 시설이 형성되는 미군에 의한 계획지구인데 대표적인 것이 미8군 제7사단의 용주골 미군휴식센터인 ‘RC1’이다. 다른 하나의 유형은 미군부대를 중심으로 성매매 알선업자들에 의해 형성된 기지촌을 한국 정부의 협조를 받아 미군이 직접 통제했던 형태이다.
 
 미군 기지촌 형성과 함께 한국 정부의 주된 관심사는 미군 위안부들을 일정지역에 집결시켜 통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국인과 미군의 잦은 접촉에서 벌어지는 폭력적 충돌에 대한 우려가 서로 맞아떨어져 미군과 미군 위안부를 한국인과 격리하는 일이 양국간 시급한 과제가 됐다.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미군 기지촌 파주읍 연풍리 용주골은 미군과 한국인의 충돌이 빈번해 미군당국과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고민해야 했다. 파주군 통계연보에 따르면 1962년 공공기관에 등록된 윤락여성은 3,415명, 1964년에는 약 1천여 명이 증가한 4,348명으로 집계된다. 이 중 주내면(파주읍)이 1,144명, 천현면(법원읍)이 932명이었다.

 정부는 미군과 한국인의 충돌을 줄이기 위해 한국인의 미군클럽 출입을 제한하는 관광업소 제도를 만들어 외국인만 출입할 수 있도록 했다. 1960년대 용주골에는 ‘문화사’라는 이름의 HID 북파공작원 부대가 있어 가끔 외출을 나오는 문화사 소속 요원과 미군 병사의 마찰이 위험한 수준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1961년 11월 ‘윤락행위 등 방지법’을 제정해 성매매 금지 정책을 실시했다. 이 법은 성매매를 금지하고 처벌하는 조항을 자세히 규정하였고, 보호 시설 관련 내용을 추가하여 성매매를 처벌하는 동시에 성매매 여성을 보호하는 사회복지법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성매매를 금지하는 ‘윤락행위 등 방지법’을 제정했지만 ‘특정지역’ 설치라는 기발한 방법을 통해 성매매를 허용하고 관리하는 방식으로 여성의 성을 외화벌이에 가장 중요한 자원으로 활용했다.
 
 정부는 국제협약에 가입한 직후인 1962년 6월 보건사회부, 법무부, 내무부 등 3부 합동으로 용산역, 영등포역, 서울역 등 전국 46개 집결지역과 파주, 동두천, 의정부, 이태원 등 32개 기지촌을 성매매 단속에서 면제해 주는 ‘적선지구’로 지정하는 등 전국에 총 104개소를 단속 예외 지역으로 지정했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윤락지역을 일반인 거주지역으로부터 격리시켜 시민들의 풍속과 교육에 미치는 악영향을 희석시키고 윤락녀들의 집단화를 유도해 관리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실질적으로는 국가의 경제성장과 외화벌이의 도구로 여성의 성을 활용했다는 게 학계의 일반적 견해이다.



 김경일 시장이 폐쇄를 선언한 연풍리 성매매집결지는 1960년대 정부의 일반인 거주지역과 격리한다는 방침에 따라 벌말(대추벌)이라고 불린 농경지에 하나 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용주골에는 큰 도로와 개울을 경계로 흑인, 백인, 한국인 출입지역이 설정됐다. 현재 주민들이 ‘집단’이라 부르고 있는 안용주골 쪽 파주교회 아래에 흑인 성매매지역, 도로와 개울 사이에 있는 중심지가 백인 성매매지역, 그리고 개울 건너 대추벌에 한국인 성매매지역이 자리를 잡았다.
 
 용주골에 있던 미군은 미국의 닉슨 독트린 정책에 따라 일부 철수했다가 다시 주둔하는 등 철수와 주둔을 반복하다가 1975년 완전 철수하면서 미군을 상대로 한 서비스산업은 붕괴했다. 그러나 한국인을 상대했던 한국인 출입지역의 성매매집결지는 오히려 그 규모가 확장됐다. 따라서 파주시가 지난 24일 시민회관 소공연장에 직원들을 모아놓고 “연풍리에 소재한 성매매집결지는 한국전쟁 과정에서 형성된 미군 기지촌이 미군 철수와 함께 사라지지 못하고 내국인의 성매매 공간으로 변모했다.”라는 내용의 언론보도 자료는 기지촌 형성과 정부의 기지촌 관리 방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 주장으로 보인다. 즉 대추벌 성매매집결지는 미군을 상대하다가 한국인 공간으로 변모한 것이 아니라 미군과의 충돌을 막기 위해 한국인 성매매출입지역으로 형성된 것이다. 



 이처럼 연풍리 성매매집결지는 미군 주둔과 함께 국가적 필요에 따라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국가가 포주였다는 합리적 주장이 결코 무리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70년 된 성매매집결지를 이제 해체하려면 우리 현대사의 아픔으로 남아 있는 용주골의 상흔에 대해 국가와 파주시장은 먼저 시민들에게 사과를 한 후 합리적 해결을 위한 시민공론장을 열어 다양한 의견을 모으는 것이 순서라는 지적이다.
 
 다음 호에는 ‘성매매집결지 업주와 종사자는 착취적 관계인가 동업자인가’를 연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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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노동자 인권침해 진정에 대한 파주시 입장문을 보며… 대추벌 성노동자모임 자작나무회가 18일 파주시의 강제 철거에 따른 인권침해를 호소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파주시는 곧바로 불법적이고 반인권적인 성매매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것이라는 입장문을 언론에 배포했다. 그런데 파주시가 입장문에서 언급한 2023년 국가인권위 발간 인권보도 참고 사례집에서는 ‘성매매 여성을 성매매 종사자나 여종업원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성매매가 마치 합법적 직업인 것처럼 간주될 위험이 있어 성매매피해자 등으로 표현할 것을 권고한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인권위 권고는 표현에 따라 성매매가 합법적 직업인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담고 있는 것이지, 성매매 여성의 인권을 침해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2010년 설립된 유엔여성기구는 “성매매와 성노동은 전 세계적으로 존재하는 현실이다. 유엔의 역할은 모든 여성이 폭력, 학대, 착취, 차별, 낙인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라며 주거권 보장 없이 진행되는 대추벌 성매매집결지 철거에 우려를 표했다. 그리고 정책 수립 과정에서 당사자 협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특히 성노동과 성매매 정책은 반드시 해당 개인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