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사람들이라면 한두 번쯤은 다 가봤을 금촌한증막이 한국전쟁 피란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964년 개성 사람을 불러다 지은 금촌한증막은 한수이북에서 가장 오래된 한증막으로 온종일 시장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장사를 했던 시장 사람들에게는 하루의 피곤을 풀 수 있는 더없이 좋은 쉼터였다. 2005년 4월 현장사진연구소가 인터뷰한 이구순(당시 71세) 씨의 사연을 소개한다. “제가 시집을 온 다음 해에 한증막을 지었어요. 그때는 손님이 아주 많았어요. 지금은 뭐 찜질방인가 뭔가 그런 게 생겨서 손님들이 별로 없어요.” 금촌한증막은 1964년에 지어졌다. 현재 이구순 씨와 아들 우종민(당시 45) 씨가 운영하고 있다. 한증막을 함께 지었던 이씨의 남편 우상명 씨는 1980년 파평면 장파리로 친구들과 천렵을 갔다가 물에 빠져 47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떠난 남편이 참 야속해요. 저는 시집살이를 지독하게 했거든요. 집을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로..... 근데 그때마다 남편은 우리가 더 오래 살지, 부모님이 더 오래 살겠냐며 무조건 참으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 이 악물고 참았어요. 그런데 글쎄,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버리는 거예요. 어찌나 서운하고 야속
파주시청 26일 아침 8시 12분 풍경입니다. 폭염을 이겨낸 나무 숲 사이로 비가 내리고, 출근 공무원의 모습도 보입니다. 커피 한 잔 생각나게 하는 아침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출근 공무원 손에 들려 있는 쇼핑백에는 동료와 함께 나눌 커피가 들어 있습니다. 방금 전 시청 주변 카페에서 산 커피입니다. 비오는 날에는 종이와 플라스틱컵에 담긴 커피가 제맛일 겁니다. 멋있게 드십시오.
현장사진연구소가 금촌 전통시장 골목에 있는 새우젓 가게를 찾았다. 새우젓 가게는 문이 열린 듯 닫힌 듯했다. 그리고 20여 년 전 ‘시장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사진작업을 할 때 만났던 이경화 할머니가 5년 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시 84세였던 할머니는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있는 현장사진연구소에 “내가 아들을 국가에 바쳤듯이 파주시도 전통시장을 활성화시켜 주면 고맙겠다.”라고 당부의 말을 했다. 이 말이 사실상 유언이 됐다. 이경화 할머니는 일제강점기인 1942년 중국 만주에서 결혼했다. 남편과 함께 북한 신의주와 흥남부두에서 살다가 스무 살에 해방을 맞아 전남 목포로 내려왔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떡을 머리에 이고 문전으로 다니며 생활하던 할머니는 인천으로 옮겨 하숙집을 운영하다가 1956년 금촌에 와 생선장사, 마늘장사에, 순대국밥을 팔다 금촌새우젓 가게를 차렸다. “고생? 아휴! 책을 열 권은 쓰고도 남을 거야. 고생한 보람이야... 애들 남한테 한 놈 안 주고 키운 게 보람이라면 보람이지. 생선은 머리에 이고 앞으로 한 놈, 뒤로 한 놈 들쳐업고, 또 한 놈은 걸리게 해서 저기 파평 샘내, 금파리 등지로 장사를 다녔지. 그때는 물건값
파주바른신문은 그동안 금촌 전통시장을 기록해온 현장사진연구소와 함께 ‘시장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세상을 떠났거나 장사를 그만둔 상인들의 사연을 연재한다. 그 첫 번째로 두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박봉조 할머니를 소개한다. 20여 년 전 금촌시장에서 만났던 박봉조(당시 65세) 할머니가 3년 전 세상을 떠났다. 현장사진연구소는 할머니를 촬영했던 그 자리를 다시 찾았다. 할머니가 쪼그려 앉아 있던 시장 모퉁이 골목에는 여전히 생선 비린내가 배여 있는 듯하다. 할머니는 당시 작은아들을 네덜란드로 음악공부를 보냈다고 자랑했다. 사춘기 그 시절, 시장 바닥에 앉아 장사를 하는 어머니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당하거나 아니면 스스로 어머니를 피해 다른 길로 다녀야 했던 씁쓸한 기억은 간혹 드라마의 소재로 등장한다. 그러나 여기, 시장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드라마가 아닌 현실이었다. 특히 결혼 3년 만인 스물아홉 살에 남편과 사별하고 두 아들을 억척으로 키워온 박봉조 씨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박씨는 인천 방직공장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남편은 금촌에서 새우젓 장사를 하는 동생에게 새우젓을 산지에서 직접 받아 보내는 일을 했다. 그런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박씨는 금
파주시청 안에 있는 카페에 들어서면 환경부장관 명의의 ‘공공부문 1회용품 줄이기 실천지침 준수 요청’이라는 공문이 게시돼 있다. 주요 내용은 “폐기물 발생량을 원천적으로 줄이기 위해 공공기관이 선도적으로 1회용품 줄이기에 나서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파주시의회는 이에 따라 상임위원회가 열릴 때마다 의원들에게 제공되던 플라스틱병에 담긴 생수를 전면 중단했다. 의원들과 직원들은 각자의 물병을 스스로 챙겨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시청카페를 이용하는 공무원들은 사무실이 코앞인데도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 사진은 7월 9일 점심식사를 마친 공무원들이 시청카페에서 일회용품 컵을 사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 이용남 선임기자
6·15 남북공동선언 19주년을 맞는 15일, 초중고생과 시민들로 구성된 ‘파주역사올레단’이 적성 답곡리의 북한군, 중국군 묘역을 찾아 평화의 소중함과 분단의 아픔을 느꼈다. ‘파주시민참여연대’ 주최로 진행된 이날 역사올레에 참가한 이들은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으로 참전한 영국군 글로스터 연대가 중공군 3만 명을 맞아 격전을 벌였던 ‘칠중성’과 영국군 설마리전투 추모공원, 민간인 학살터, 북한군, 중국군 묘지 등을 답사했다. 남북공동선언은 2000년 6월 15일 분단 이후 최초로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첫째 통일 문제의 자주적 해결, 둘째 1국가 2체제의 통일방안 협의, 셋째 이산가족 문제의 조속한 해결, 넷째 경제 협력 등을 비롯한 남북 간 교류의 활성화 등에 합의한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군 묘역에 비영리단체 등록 현수막이 걸렸다. 2018년 7월 31일 경기도지사가 내준 ‘사단법인 한중평화우호협의회’의 비영리법인 설립허가증을 확대한 것이다. 대표자는 라남주 파주호남향우회장이다. 이 협의회는 한중 양 국민 간의 긴밀한 민족역사, 문화, 관광 교류를 통하여 전통적인 우호 선린관계를 유지하고, 민간 외교 사절을 통한 동북아시아지역의 평화적 안정 정착을 설립 목적으로 하고 있다. 특히 중국군 묘지(적성면 답곡리) 행사 지원과 위령탑 건립, 북한군 전사자 묘지 잡초 제거, 중국군 전사자 추모 천도재 등을 사업 목표로 하고 있다. 국회의원 박정은 이 단체의 고문이다. 박 의원은 “한중 문화 교류와 중국 관광객 유치를 활동목표로 삼고 있어 고문직 요청을 수락했다.”라고 말했다. 박정 국회의원이 북한군 묘역 천도재에 참석한 것은 이념적 사상보다는 단체의 고문 자격에 무게를 둔 것으로 보인다. 실제 박 의원은 단체로부터 초청을 받아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참석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최종환 파주시장과 손배찬 파주시의회 의장 등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 역시 ‘한중평화우호협의회’의 행사에 단순 초청된 것뿐이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단체의 고문을 맡고 있는
28년 전인 1991년 5얼 12일 파주 광탄면 영장리 출신 김기설의 영결식이 서강대 청년광장에서 민주국민장으로 치러졌다.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김기설 사회부장은 5월 8일 오전 6시께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서강대 옥상에서 분신했다. 군사정권은 “전민련 총무부장이던 강기훈 씨가 김 씨의 유서를 대신 썼다.”라며 강 씨를 구속했다. 대법원은 2015년 5월 14일 무죄를 선고했다. 경희대 출신 최종환은 당시 김기설 사회부장과 자취방에서 함께 지내는 등 각별한 사이였다. 최 시장은 91년 5월 8일 지방에 가던 중 분신 소식을 듣고 급히 되돌아오는 등 충격에 빠졌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랬던 최종환은 현재 파주시장이 됐다.
봄날 주문진 동해바다. 예순을 넘긴 돼지, 닭, 양띠 중년들이 사진가의 구령에 맞춰 하늘로 튀어 오른다. 수차례 반복되는 다시 뛰기에 모두 박장대소 어린아이가 된다. 공무원 정년퇴직, 사업가, 사진가의 길을 걸으며 뭔가 답답했을 가슴이 활짝 열리는 듯하다. 지나가는 낯선 눈도 있지만... 그래도 가끔은 뛰어오르고 싶다.
파주시의원 10명이 29일 아침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중국으로 출국했다. 시의원들은 첫날 상해 임시정부청사 공식방문을 시작으로 1932년 4월 25일 도시락 폭탄 의거가 있었던 홍구공원(노신공원)의 윤봉길 기념관과 애국지사 유적지를 탐방한다. 둘째 날에는 연길과 용정으로 이동해 민족운동가들이 자주 올랐던 일송정, 간도 지방의 해란강, 윤동주 시인이 다니던 용정중학교와 생가 등을 방문할 예정이다. 5월 1일에는 민족의 영산 백두산과 1939년 이시이 시로가 창설한 하얼빈의 일본군 731 생체실험부대를 둘러본 후 마지막 날에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과 문화탐방을 할 계획이다. 그러나 출국장에서 아쉬움도 남겼다. 29일 오전 7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파주시의원들이 가방을 정리하는 등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파주바른신문 취재진이 단체 사진 촬영을 요청했다. 이용욱 의원이 “기왕이면 해외연수 펼침막을 들고 찍자.”라며 의회사무국 직원에게 펼침막을 달라고 했다. 연수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산업기술원 지방자치연구소 직원이 손사래를 치며 “여기 공항에 기자들이 많아 펄침막을 들고 찍으면 안 된다.”라고 만류했다. 외유성 연수로 오해할 수도 있다는 거였다. 펼침막 내용은
파주시가 산불방지 총력 대응을 선포한 9일 아침 8시 40분께 육군항공대 울타리 하나 사이에 있는 논두렁이 타올랐다. 이곳은 농업기술센터(소장 차정만) 바로 앞에 있는 논이다. 연기가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치솟았다. 그러나 불과 100여 미터 앞 파주시농업기술센터 공무원들은 잠잠하다. 파주시가 9일 아침 언론에 배포한 산불방지 총력 대응 보도자료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산불재난 국가위기경보가 ‘경계’ 단계로 상향 발령됨에 따라 대형 산불방지를 위해 산불대책 상황실 운영 강화 및 전 직원의 6분의 1 인원 근무조 편성 등 비상근무체계를 확립해 총력 대응태세를 갖추고 주요 등산로 등 산불취약지역에 산불감시원, 산불전문예방진화대원을 집중 배치해 불 놓는 행위를 엄격히 단속한다. 주요 산불발생 원인인 논‧밭두렁 및 쓰레기 소각행위를 집중 단속하고 등산객을 대상으로 산불예방 캠페인 및 리플릿 배부를 통한 주민 홍보도 실시해 산불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는데 주력할 예정이다. 또한 산불전문예방진화대의 차량 방송 및 각 읍면동 이·통장들을 통한 마을방송을 실시하고 마을 주민과 농업인들에게 산불방지 계도문자를 발송해 홍보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계획이다. 산불 발생 시에
탄현면 낙하리 다온숲 수제 맥주 공장. 호기심 가득한 지체 장애우 10여 명이 맥주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위생 모자를 쓴 세 명의 브루어(Brewer)는 조심조심 체험생의 손을 잡고 양조 탱크에 올라 맥주가 만들어지는 공정을 설명한다. “뭐 조금 어색하긴 하죠. 그래도 아침이면 아주 가벼운 발걸음과 설레는 마음으로 출근합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두려움도 있지만 제2의 인생을 설계하는 두근거림이 심장을 젊게 하는 것 같습니다.” ‘다온숲 브루어리’는 1957년생 초등학교 동창들이 뜻을 모아 세웠다. 맥주 경험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수년 간 학원과 전국을 발품 팔아가며 연구했다. 설립자금은 건설업을 하고 있는 박호식 대표가, ‘브루어’는 양용복 전 파주시농업기술센터 소장, 이수용 전 경제복지국장과 고양시교육청 노재홍 전 경영지원국장이 맡았다. 파주 출신답게 맥주 이름도 임진강, 디엠지, 도라산, 다온, 파주, 자유로, 판문점 등으로 지었다. 맥주를 빚는 물은 지하 500m 암반수다. 그리고 교과서에 나와 있는 재료와 40여 년 공직생활에서 얻은 정직으로 만든다고 했다. 그리고 ‘한반도 평화수도 파주’가 표현되는 맥주 생산도 계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