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환 파주시장이 파주시와 고양시 경계 조리읍 장곡리 통일로 주변에 세워졌던 장준하 새긴돌을 강원도 동해에서 모셔오겠다고 공개 선언했다. 최 시장은 17일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장준하추모공원에서 열린 장준하 선생 서거 44주기 추모식 추모사를 통해 “1989년께 우리 파주시에 세워졌던 장준하 선생 새긴돌이 갑자기 사라졌는데 최근 한 지역언론인의 추적 취재로 강원도 동해시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파주시는 이 새긴돌을 모셔와 장준하추모공원에 다시 세우겠다.”라고 밝혔다. 이날 추모식에는 유족들과 김원웅 광복회장, 박정, 김두관 국회의원, 손배찬 파주시의회 의장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장준하 선생의 장남인 (사)장준하선생기념사업회 장호권 회장은 “이 나라가 다시는 외세에 흔들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장준하 선생은 1944년 일본군에 징집되어 중국 쉬저우지구에 배속되었으나 6개월 만에 탈출해 광복군에 합류했으며, 일본의 항복으로 중국으로 복귀한 뒤 1945년 11월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귀국했다. 이후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 반대운동을 주도하던 중 1975년 포천의 약사봉에서 의문사했다.
통일의 길목에 세워졌다가 괴한들이 새긴돌에 3일간 불을 지르거나 거적을 덮어 추모객들의 접근을 차단하는 등 시련을 겪었던 민족지도자 장준하 선생의 새긴돌이 강원도 동해시 백두대간 이기령 자락에 있는 것으로 취재 결과 확인됐다. 광복 74주년 기념일인 8월 15일 새벽. 파주에서 출발한 취재차량이 폭우를 동반한 태풍 크로사의 영향으로 어렵게 동해시 무릉계곡 입구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다시 3km의 깊은 골짜기를 따라 들어갔다. 불어난 계곡물이 급류로 변해 바위를 내리치는 소리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와 뒤섞여 그날의 함성 대한독립만세처럼 들렸다. 그러나 새긴돌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다행히 15가구 정도가 살고 있는 산골 이기리에서 10여 년간 마을 일을 맡았던 오화선(72) 전 이장을 만났다. 오 전 이장은 ‘장준하 새긴돌’ 사진을 보여주자 백기완 선생을 기억해 냈다. 20년 전인가 그보다 더 됐는가, 여하튼 새긴돌이 마을에 들어올 때 함께 거들었다고 했다. 장화로 갈아신은 오 전 이장을 따라 석현사 앞으로 갔다. 우산대로 풀섶을 헤치며 들어가자 그곳에 장준하 새긴돌이 비를 맞고 있었다. 처음 회색이었던 새긴돌은 괴한
민족지도자 장준하 선생 서거 44주년 추모식이 오는 17일 탄현면 성동리 ‘장준하 공원’에서 열린다. 본래 묘소는 파주시 광탄면 ‘나사렛 천주교 공동묘지’에 있었으나 2012년 8월 파주시가 조성한 통일공원으로 옮겼다. 장준하 선생은 1944년 일본군에 징집됐다가 6개월 만에 탈출해 광복군 간부훈련을 받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배속됐다. 해방 후에는 잡지 ‘사상계’를 간행하면서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가 여러 차례 투옥됐으며, 유신체제 반대 운동을 벌이던 1975년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사했다. 사진은 현장사진연구소가 기록한 ‘장준한 선생 새긴돌’이다. 1989년 6월 30일 통일의 길목인 파주시 장곡리 검문소 앞에 세워졌으나 이후 감쪽같이 사라졌다. 당시 새긴돌에는 장준하 선생의 약력을 이렇게 썼다. 장준하 선생은 단기 4251년(1918) 8월 27일(음력) 평북 의주에서 태어나셨으며 젊은 날에는 독립군 대위로 일제와 싸우셨다. 8.15 해방 이후에는 한때 백범 김구 선생의 비서를 역임하시고 이승만 독재와 박정희 군사독재와 싸우시다가 그 싸움의 결정적 고비인 단기 4308년(1975) 8월 17일 박정희로부터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원
최종환 파주시장이 마을 살리기 정책을 본격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탄현 낙하리 마을이 문산에서 도라산 간 고속도로 건설 공사로 인해 사라질 우려가 있다며 탄현면이 지역구인 파주시의회 안소희, 최창호 의원이 지적하고 나섰다. 한국도로공사는 지난 5월 8일 자유로 낙하IC에서 새로 개설되는 문산-도라산 고속도로 탄현IC에 연결하는 접속도로 공사를 코오롱, 금호, 계룡 등 건설사에 설계와 시공을 일괄 입찰하는 방식인 ‘턴키입찰’을 발주했다. 문산-도라산 고속도로 제1공구 건설공사는 4차로 3.6km이며, 제2공구는 4차로 8.06km이다. 이에 따라 각 3개 건설사는 정부의 기본안을 그대로 수용하거나 공사비 절감과 공기 단축이 가능한 설계를 수정 제안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 기본안은 가능한 주민들의 삶의 공간을 침해하지 않는 임야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계획돼 있다. 그러나 건설사들은 자유로에서 탄현IC 접속 거리를 줄이기 위해 정부 기본안과는 달리 낙하리 마을을 직접 관통하는 방식의 수정안을 설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방식으로 추진될 경우 골짜기 형태로 길게 뻗어 있는 마을 특성상 평면도로와 교각 도로 방식 모두 마을을 두 동
파주시가 일회용품 줄이기 차원에서 벌이고 있는 전 공무원 텀블러 사용하기 운동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파주바른신문이 6일 아침 8시부터 9시까지 파주시청 주변 카페를 1시간 동안 관찰한 결과 50여 명 중 40여 명이 텀블러를 사용하거나 카페가 제공하는 머그컵을 이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시청의 한 팀장 공무원이 텀블러를 카페에 가지고 들어갔다가 커피가 담긴 플라스틱컵 서너 개가 담긴 종이 바구니를 들고나오는 등 여전히 비협조적인 모습도 목격돼 아쉬움을 남겼다. 농협 파주시청출장소와 파주시시설관리공단도 파주시의 일회용품 줄이기 운동에 동참하기 위해 텀블러를 구입해 직원들에게 나눠주고 환경교육을 실시하는 등 적극 협조하고 있다. 또한 시청 주변 카페는 텀블러를 가져오는 고객들에게 200원에서 500원을 깎아주고 있다.
아들의 이름을 따 지은 호철상회는 금촌에서 제일 먼저 장이 섰던 문화로 뒷골목 구시장에 있었다. 지금은 건강상의 문제로 문을 닫았다. 그 자리에는 부부상회라는 이름이 붙었다. “처음엔 작업복 같은 남성복을 팔았어. 우리 애들이 고생했지. 우리야 부모니까 당연히 고생을 하는 거지만 애들이야 무슨 죄가 있어 그렇게 고생을 했는지.....지금이야 이렇게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지만, 정말 우린 힘들게도 살았고, 열심히도 살았어.” 나무 궤짝으로 만든 돈 통에서 10여 개의 저금통장을 꺼내 보이며 어려웠던 시절을 얘기하는 이재희(85) 씨의 얼굴에서 세월의 흔적이 읽혀진다. 이씨는 한국전쟁으로 파평면 덕천리로 피란하기 전까지 적성면 장좌리에서 살았다. 이곳은 지금 주한미군 탱크 훈련장으로 변해 있다. 이씨는 파평 샘내시장에서 열여섯 살부터 장사를 시작했다. 그렇게 10여 년간 장사를 하다가 탄현면 성동리 박영재(86) 씨와 중매 결혼했다. “1964년에 결혼을 했는데, 하필 그 해에 큰물이 나서 농사를 망친 거야. 옛날에야 집집마다 식구는 많은데 먹을 거리는 많지 않았잖아. 그래서 농사지어서는 온 가족이 먹고 살기 어려워 남편이 미군 부대에 취직을 하면서 살림을
2018 지방선거 파주시의원 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한 홍윤기 씨가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민주당의 정체성과 박정 국회의원의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며 연일 비판하고 있다. 홍 씨는 그러면서 내년 총선에서 시민들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며 사실상 박정 의원의 낙선 운동에 나설 것을 주장하고 있다. 현재 ‘더불어함께 기부회’ 회장을 맡고 있는 홍윤기 씨는 2일 파주바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그동안 자유한국당에서 활동해 온 최유각 파주시의원을 영입 공천한 것은 당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훼손한 것이다. 이는 박정 의원이 사람을 써먹은 후 버리는 습관적 정치관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홍 회장은 “지난 2014년 지방선거 때는 파주시의원 새누리당 비례대표를 한 최영실 전 의원을 더불어민주당 파주시의원 비례대표로 영입하는 등 민주당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행태를 보여줬다.”라고 지적했다. 박정 국회의원은 취재진의 질문에 “당시 후보자의 자격 심사는 더불어민주당 ‘공직선거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 등에서 엄정히 심사했고, 홍윤기 씨는 공천에서 배제된 것이 아니라 최유각, 이성철 후보와 경선을 벌여 탈락했다. 그리고 지방선거 기초의원 후보자 공천은 경기도당이 공개적인
칠흑의 밤. 비가 억수로 내리는데도 숲 모기는 군부대가 파놓은 길옆 진지에 숨죽여 있는 대학생들의 온몸을 물어뜯는다. 이틀간 양계장 일을 하며 갈아입지 못한 옷에 닭똥이 묻어 있어 더한 듯했다. 먼동이 트는 새벽하늘 사이로 빗줄기가 희미하게 보일 무렵 파평면 박석고개쯤에서 탱크 소리가 들려온다. 2002년 8월 3일 오전 5시 30분 파주 적성면 답곡리 농로. 신효순 심미선 두 여중생의 영정사진을 든 한총련 소속 대학생 13명이 ‘다그마노스훈련장’으로 이동하던 미2사단 캠프하우즈 소속 44공병대대 장갑차 40여 대의 행렬을 가로막았다. 학생들은 대형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장갑차 위로 뛰어올라 “살인 미군 처벌없이 훈련재개 웬말이냐! 재판권을 이양하고 부시는 공개 사죄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그리고 여중생들의 영정을 든 채 농로를 점거한 뒤 장갑차 궤도 밑에 머리를 들이밀고 누워버렸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미군들은 효순이와 미선이의 49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전차훈련을 시작했다. 이것이 미군이 말하는 사과이며 애도인가?”라며 미2사단의 훈련 재개를 비난했다. 장파리 일부 주민들은 시위 도중 폭우가 쏟아지자 미처 비옷을 준비하지 못한 학
파주시청 주변 카페가 파주시의 1회용품 줄이기 운동에 동참하는 의미로 텀블러를 사용하는 손님에게 커피 등 과일 음료를 200원에서 최대 500원까지 깎아 주기로 했다. 문화로 보훈회관 1층에 있는 ‘에스쁘아’는 커피류 200원을, 쥬스 등 음료는 300원을 할인해준다. 시민회관길에 있는 ‘커피에 반하다’는 전품목에 대해 200원을, ‘안단테 153’은 토마토 쥬스 등 과일 음료를 200원~500원을 할인하고, ‘칼디’는 전품목 할인 쿠폰을 적용하며, 중앙로 동문인쇄 건물에 있는 ‘투썸플레이스’는 전품목을 300원 할인한다.
파주환경운동연합(공동의장 노현기)이 파주시의회 이성철 의원의 녹색환경대상 수상과 관련 논평을 내 비판했다. 파주환경련은 29일 ‘환경부는 선정기준과 방식 점검도 안 하고 환경대상을 후원하는가?’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최근 산지 경사도를 대폭 완화시켜 파주지역 산지난개발을 부추겼다고 지탄받고 있는 파주시의회 도시산업위원장 이성철 의원이 환경대상을 받았다.”라며 상을 준 환경법률신문과 환경방송, 이를 후원한 환경부 등 정부 기관을 비판했다. 특히 “상을 수여하는 기관의 성격도 모호하지만 수상자 선정방식도 베일에 가려져 있어 선거시기 공보물에 수상경력 한 줄 추가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환경대상을 파주시의회가 의원들끼리 돌아가면서 상장을 만들어 주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이성철 의원은 “보존과 개발은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라 어떠한 것이 공익에 우선하는 것인지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다. 적성, 파평, 법원 등 파주 북동권은 급격한 인구 감소 등으로 지역공동체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라며 산지 경사도 완화 조례 개정 타당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성철 의원의 환경대상 수상 공적 조서에는 환경과 관련된 의정활동이 전혀 언급돼 있지 않은
시장 사람들이라면 한두 번쯤은 다 가봤을 금촌한증막이 한국전쟁 피란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964년 개성 사람을 불러다 지은 금촌한증막은 한수이북에서 가장 오래된 한증막으로 온종일 시장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장사를 했던 시장 사람들에게는 하루의 피곤을 풀 수 있는 더없이 좋은 쉼터였다. 2005년 4월 현장사진연구소가 인터뷰한 이구순(당시 71세) 씨의 사연을 소개한다. “제가 시집을 온 다음 해에 한증막을 지었어요. 그때는 손님이 아주 많았어요. 지금은 뭐 찜질방인가 뭔가 그런 게 생겨서 손님들이 별로 없어요.” 금촌한증막은 1964년에 지어졌다. 현재 이구순 씨와 아들 우종민(당시 45) 씨가 운영하고 있다. 한증막을 함께 지었던 이씨의 남편 우상명 씨는 1980년 파평면 장파리로 친구들과 천렵을 갔다가 물에 빠져 47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떠난 남편이 참 야속해요. 저는 시집살이를 지독하게 했거든요. 집을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로..... 근데 그때마다 남편은 우리가 더 오래 살지, 부모님이 더 오래 살겠냐며 무조건 참으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 이 악물고 참았어요. 그런데 글쎄,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버리는 거예요. 어찌나 서운하고 야속
파주시청 26일 아침 8시 12분 풍경입니다. 폭염을 이겨낸 나무 숲 사이로 비가 내리고, 출근 공무원의 모습도 보입니다. 커피 한 잔 생각나게 하는 아침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출근 공무원 손에 들려 있는 쇼핑백에는 동료와 함께 나눌 커피가 들어 있습니다. 방금 전 시청 주변 카페에서 산 커피입니다. 비오는 날에는 종이와 플라스틱컵에 담긴 커피가 제맛일 겁니다. 멋있게 드십시오.
현장사진연구소가 금촌 전통시장 골목에 있는 새우젓 가게를 찾았다. 새우젓 가게는 문이 열린 듯 닫힌 듯했다. 그리고 20여 년 전 ‘시장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사진작업을 할 때 만났던 이경화 할머니가 5년 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시 84세였던 할머니는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있는 현장사진연구소에 “내가 아들을 국가에 바쳤듯이 파주시도 전통시장을 활성화시켜 주면 고맙겠다.”라고 당부의 말을 했다. 이 말이 사실상 유언이 됐다. 이경화 할머니는 일제강점기인 1942년 중국 만주에서 결혼했다. 남편과 함께 북한 신의주와 흥남부두에서 살다가 스무 살에 해방을 맞아 전남 목포로 내려왔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떡을 머리에 이고 문전으로 다니며 생활하던 할머니는 인천으로 옮겨 하숙집을 운영하다가 1956년 금촌에 와 생선장사, 마늘장사에, 순대국밥을 팔다 금촌새우젓 가게를 차렸다. “고생? 아휴! 책을 열 권은 쓰고도 남을 거야. 고생한 보람이야... 애들 남한테 한 놈 안 주고 키운 게 보람이라면 보람이지. 생선은 머리에 이고 앞으로 한 놈, 뒤로 한 놈 들쳐업고, 또 한 놈은 걸리게 해서 저기 파평 샘내, 금파리 등지로 장사를 다녔지. 그때는 물건값
파주바른신문은 그동안 금촌 전통시장을 기록해온 현장사진연구소와 함께 ‘시장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세상을 떠났거나 장사를 그만둔 상인들의 사연을 연재한다. 그 첫 번째로 두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박봉조 할머니를 소개한다. 20여 년 전 금촌시장에서 만났던 박봉조(당시 65세) 할머니가 3년 전 세상을 떠났다. 현장사진연구소는 할머니를 촬영했던 그 자리를 다시 찾았다. 할머니가 쪼그려 앉아 있던 시장 모퉁이 골목에는 여전히 생선 비린내가 배여 있는 듯하다. 할머니는 당시 작은아들을 네덜란드로 음악공부를 보냈다고 자랑했다. 사춘기 그 시절, 시장 바닥에 앉아 장사를 하는 어머니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당하거나 아니면 스스로 어머니를 피해 다른 길로 다녀야 했던 씁쓸한 기억은 간혹 드라마의 소재로 등장한다. 그러나 여기, 시장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드라마가 아닌 현실이었다. 특히 결혼 3년 만인 스물아홉 살에 남편과 사별하고 두 아들을 억척으로 키워온 박봉조 씨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박씨는 인천 방직공장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남편은 금촌에서 새우젓 장사를 하는 동생에게 새우젓을 산지에서 직접 받아 보내는 일을 했다. 그런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박씨는 금
대한민국 최대 미군기지였던 파주읍 용주골 이야기가 외국 학술지 심사를 거쳐 영문판으로 출간될 계획이다. 영국, 아일랜드,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등 영미권에서 출판될 이 책은 아마존 판매와 함께 해외 학교 도서관 등에 보급될 예정이다. 서울대 아시아연구소는 “이제까지의 기지촌 연구가 여성에게만 초점을 둔 반면 기지촌이라는 공간이 어떻게 변화해 갔는지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연구가 없었기 때문에 파주읍 연풍리의 공간적 시각을 중심으로 지역경제 생태계, 지역의 통치체제, 한미관계, 안보와 기지촌 등 재개발 문제 등을 분석하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이승욱 교수는 국내가 아닌 외국에서 영문판으로 출간하는 이유에 대해 “연구주제 자체가 해외에서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문제로 판단했다. 특히 이 책은 대중서적이 아니라 학술서적이어서 국내에서는 아무래도 기지촌 연구자가 많지 않아 영문판을 내게 되면 해외의 기지촌 연구에도 반향을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현장사진연구소와 함께 용주골 등 파주 기지촌을 2년간 연구해 온 서울대 아시아연구소는 올 연말까지 자료를 확정하고 내년 상반기 논문 집필과 함께 외국 학술지의 심사를 거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