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지방법원 제1행정부(부장판사 변민선)는 3일 파주시가 지난해 9월 조리읍 봉일천리 캠프하우즈 주변 도시개발사업 시행자인 ㈜티앤티공작(티앤티)에 대해 ‘사업시행자 지정 취소처분’을 하자 티앤티가 낸 ‘행정심판 및 행정소송 효력 집행정지’ 신청을 모두 기각했다. 파주시는 2009년 공모를 통해 ‘티앤티’를 사업자로 선정해 반한 미군부대인 캠프하우즈의 공원 조성은 파주시가 맡고, 도시개발사업은 ‘티앤티’가 추진한다는 협약을 체결해 2014년 도시개발사업 구역지정 및 개발계획에 대한 사업 시행을 승인했다. 그러나 ‘티앤티’는 금융사 및 건설사 책임준공 확약서를 미제출하고 토지 보상 및 주민이주대책 계획을 세우지 않는 등 지난해 말까지 부담해야 할 재정 분담금 150억 원을 부담하지 않는 데다 실효성 없는 양해각서만 제출했다. 파주시는 2016년 3월부터 실시계획인가를 위해 ‘티앤티’ 측에 승인 조건과 협약, 인가요건 이행 및 요건 충족 등을 요구했으나 신뢰할 만한 이행 계획을 제출하지 않아 민간사업자 지정을 취소했다. 캠프하우즈 주변지역 도시개발사업은 조리읍 봉일천리 110-11번지 일원의 47만6천㎡(약 14만평)에 공동주택 등을 조성하는 사업으로 2014년
파주시가 반환 미군기지인 캠프하우즈를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평화공간으로 조성한다. 언론협동조합 파주바른신문은 오랜 기간 파주 미군 기지촌을 기록해 온 현장사진연구소와 공동으로 캠프하우즈를 둘러싼 지역사회를 들여다본다. 그 첫 번째로 1968년 가을 조리읍 봉일천4리에서 흑인 미군병사에 의해 살해된 열아홉 살 미군위안부 사건을 당시 이를 목격한 주민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재구성한다. “한 50년 됐나?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저 위, 공릉 가는 길 그쪽 이층집에서 흑인 미군병사가 열아홉 살이나 됐을까 싶은 그 양색시를 목에 끈을 매 창문 밖으로 끌어내 죽인 거야. 그때 봉일천 삼화병원 의사가 저 소나무 아래에서 해부(사체 검안)를 했었지.” 조리읍 봉일천4리 이재춘(96) 할아버지의 기억이다. 할아버지가 기억하고 있는 살해 현장은 2층집이었다. 1층은 미군 홀이었고 2층은 기지촌 여성들의 숙소인 이른바 ‘벌집’이었다. 흑인병사는 술을 마신 후 2층에서 한국 여성과 잠을 잤다. 그리고 이른 아침, 벌집 창문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곧이어 넓적한 허리띠처럼 생긴 끈에 목을 매단 여성이 창문 밖으로 내던져졌다. 흑인병사는 발버둥치는 여성의 목줄을 당겼다
“25년 전 장준하 선생 시비가 우리 마을로 들어오는 것에 사실상 찬성하는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아무리 시골에 살고 있어도 장준하 선생이 어떤 사람인지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가져온 걸 뭐 얘기할 필요가 있겠나 싶어 그냥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기 산골짜기에 있는 것보다는 파주 분들의 말씀대로 후학을 위해 장준하 선생님 묘역으로 옮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강원도 동해시 이기리 마을에서 태어나 현재까지 살고 있는 오화선(71) 전 이장이 마을을 찾은 ‘장준하시비이전위원회’ 회원들에게 한 말이다. 지난 11월 18일 ‘장준하시비이전위원회(위원장 이경형)’ 회원 10여 명은 30년 전 파주 장곡리 검문소 옆에서 동해시 이기리로 옮겨진 장준하 선생 시비와 새긴돌을 찾아나섰다. 이 마을 오화선 전 이장은 자신이 이장을 맡았던 때인 1994년께 시비와 새긴돌이 마을로 들어왔다고 기억한다. 해병대원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오화선 전 이장은 당시 트럭에 실려 온 시비와 새긴돌에 장준하 선생의 이력이 있었는데, 선생이 어떤 인물인지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즉, 장준하 선생을 독립운동가보다는 국가 안보와 배치되는 인물로
파주시가 파평면 덕천리 아프리카돼지열병 살처분 매몰지에서 침출수가 유출되고 있다는 JTBC 보도와 관련 이를 전면 반박하는 보도자료를 내는 한편 15일 JTBC 취재진과 현장 조사를 벌였다. 이날 농림축산식품부는 침출수와 토양을 채취해 검역 당국에 성분 분석을 의뢰했다. JTBC는 14일 “연천 말고 없다더니... 파주 살처분 매몰지에서도 침출수”라는 내용으로 보도했다. 파주시는 즉각 보도자료를 통해 “보도된 장소는 살처분 돼지사체 매몰지가 아니라 돼지사체를 랜더링 방식으로 분쇄해 180도의 고온으로 가열한 후 발효를 거친 검은색 왕겨와 톱밥 등을 섞어 퇴비를 만드는 장소이며, 침출수는 돼지사체에서 직접 유출된 혈액이 아니라 퇴비화 과정에서 검은 왕겨가 온도상승에 따라 증기가 응축돼 흘러나온 퇴적물이다.”라고 밝혔다. 15일 침출수 현장에 나온 경기도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관계자는 “농촌의 퇴비더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암록색 침출수와 같은 현상이다. 랜더링 후 사용되는 왕겨는 미생물 배양을 위한 발효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왕겨가 검은색이다. 이 검은색 왕겨에서 돼지사체 혈액처럼 보이는 암록색 물이 나온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농림축산식품부 방역정책과 이중혁
임진강 리비교가 숱한 사연을 뒤로 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있다는 파주바른신문 보도와 관련, 파주시장 권한대행을 맡았던 김준태 경기도 도시주택실장이 아쉬움을 나타내는 등 많은 사람들이 리비교의 역사적 의미를 안타까워하고 있다. 경기도 김준태 실장은 “리비교를 리모델링해 토목교량의 교육적 자산과 관광자원으로의 활용 계획이 리비교 철거와 재가설로 사실상 무산된 것 같아 많이 아쉽다.”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문자로 보내왔다. 2017년 1월 파주부시장으로 부임한 김준태 실장은 이재홍 시장의 구속으로 파주시장 권한대행직을 수행하는 등 2018년 7월까지 재직하다가 현재는 경기도 도시주택실장을 맡고 있다. 김 실장은 권한대행 시절인 2017년 5월 남경필 경기도지사를 비롯 더불어민주당 박정 국회의원, 최종환, 한길룡 경기도의원 등과 함께 리비교 현장을 방문해 리비교의 역사를 활용한 토목교육장과 관광자원화 계획에 기대를 보이기도 했다. 지방행정동우회 파주시지부 송영길 지부장은 “한국전쟁 등 특별한 역사를 안고 있는 리비교가 애초 계획과는 달리 전면 재가설되는 것이 안타깝다. 진작에 리비교를 문화재로 관리했어야 했는데 너무 아쉽다.”라고 했다. 파주시청 문화공보실
장준하시비이전위원회(위원장 이경형)가 창립 첫 번째 사업으로 강원도 동해시 산속에 있는 장준하 선생 새긴돌과 시비를 답사한다. 김대년 집행위원장은 “창립식과 함께 병석에 계신 백기완 선생을 찾아뵐 예정이었으나 선생께서 아직 대화를 할 정도로 병세가 회복되지 않아 먼저 동해시에 있는 시비와 새긴돌을 답사한 후 백 선생님의 병문안을 추진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동해시에 있는 장준하 선생 시비 답사를 위해 오는 18일 오전 8시 금촌에 있는 파주스타디움(종합운동장)에서 출발할 예정이다. 위원회는 이날 장준하 선생 시비가 있는 이기리 마을 주민들도 만날 예정이다. 장준하 선생 시비는 1985년 야당지도자였던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롯 민주화 동지들이 십시일반으로 제작해 1989년 파주시 장곡리 검문소 부근에 새긴돌과 함께 세워졌으나 괴한들이 시비에 불을 지르는 등의 탄압으로 강원도 동해시로 옮겨졌다. 이에 따라 뜻 있는 파주 시민들이 모여 지난 7일 장준하시비이전위원회 창립식을 갖고 시비와 새긴돌을 현재 장준하 선생이 모셔진 탄현면 ‘장준하 공원’으로 이전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리비교를 건널 때는 먹고 살아야 하니까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가는데 밤 10시까지 미군과 놀고 다시 리비교로 나오면 휴... 하고 숨을 내쉬며 살았구나 했지. 임진강 건너에는 미군부대 가 천지였는데, 재수가 좋은 날이면 미군한테 10불, 20불도 받고, 재수 없으면 콜라 한 병도 못 얻어먹고 나온 날이 많아... ” ‘베기 박’(71)이 문산 선유리 미군 기지촌에 온 것은 17살 때인 1966년이었다. ‘베기 박’은 미군이 떠난 지금까지 선유리에 살고 있다. ‘베기 박’은 리비교에 대한 생각이 남다르다. 어린 여성을 찾는 미군클럽 매니저 눈에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들어가기 어렵다는 임진강 건너 미군부대에 불려갔다. 미군 전용 아리랑 택시를 타고 임진강 리비교 검문소를 지날 때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버텼다고 한다. 그리고 밤 10시가 되면 구불구불 캄캄한 흙먼지 길을 따라 ‘리비교’를 다시 건너는데, 그때 임진강을 비추고 있는 군사용 조명이 그렇게 아름다웠다고 한다. ‘베기 박’은 그렇게 5년간 리비교를 건넜다. 한국전쟁 정전협정 이후 임진강 건너에는 미군부대가 밀집했다. 초평도
“파주 장곡리 검문소에 세웠던 장준하 선생 시비는 엄혹한 군사독재 시절에 장준하 선생님과 함께 투쟁 대열에 섰던 당시 야당의 지도자 김영삼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해 평생을 통일운동에 몸바치고 계시는 백기완 선생 등 민주화 투쟁 동지들이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경형 위원장의 창립 기념사 중 한 대목이다. ‘장준하시비이전위원회’ 창립식이 7일 탄현 낙하리 ‘다온숲 카페’에서 열렸다. 이날 창립식에는 ‘장준하기념사업회’ 장호권 회장과 김도현 전 문체부 차관, 중앙선관위 김대년 전 사무총장 등 50여 명이 모였다. ‘장준하시비이전위원회’ 고문인 김도현 전 차관은 “파주가 정말 좋은 분인 장준하 선생을 파주에 모셨다. 그럼에도 그동안 우리가 잘못한 것이 있다. 파주 장곡리 검문소 부근에 세워졌던 장준하 선생 시비를 지키지 못 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지게 한 것은 대단히 죄송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경형 위원장은 기념사에서 “장준하 시비를 선생의 혼백을 모신 통일동산의 장준하 공원에 제대로 정립시키는 일은 장 선생에 대한 숭모의 정을 새롭게 다지고 우리의 결의를 다지는 일이다. 이것은 단순한 시비가 아니라 엄혹한 한 시대의 끈질기게
“우리는 임진강에서 길이 1,075피트, 높이 65피트의 다리를 짓고 있었다. 당시 작은 망원경으로 올려다보니 반 마일쯤 떨어진 산 위에 중공군이 보였고, 때때로 빨간 별이 그려진 중공군 ‘MIG 17 정찰기’도 나타나 다리 공사를 관찰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1953년 7월 4일 다리 준공식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미8군 지휘관 맥스웰 테일러(Maxwell Taylor) 장군이 명예훈장을 받은 ‘리비’ 병장(넬슨은 병장으로 기억함)의 이름을 따 ‘리비교’라고 지었다. 한국인 기술자가 있었는데도...” 1931년 미국 캔자스에서 태어난 넬슨 래드(Nelson S. Ladd)는 1952년 한국전쟁에 다리 건설 전문 직업군인으로 참전했다. 계급은 상병이었다. 넬슨이 처음 주둔한 곳은 서울 영등포였다. 넬슨의 병과는 섹션3에 배정됐다. 섹션3은 엑스레이(X-RAY) 작전으로 불린 다리 건설에 투입되는 전문가 그룹을 일컬었다. 넬슨은 제84건설공병대 소속 측량사로 입대했다. “서울 영등포 본부중대로부터 지시를 받았어요. 임진강 엑스레이 다리 건설 현장으로 가라는 명령을요. 우리는 트럭을 타고 북쪽으로 50마일 정도를 갔어요. 문산인가 여하튼 그런 이름 이 있
도서관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26일 ‘우리 고장의 역사 유적 탐방’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조리읍 봉일천의 반환 미군부대 ‘캠프 하우즈’를 찾아 해외입양인의 마음의 고향인 ‘엄마 품 동산’과 부대장이 참모들과 회의를 열었다는 한국식 정자와 약수터, 그리고 24m 높이의 물탱크와 군사 벙커 등을 돌아봤다. 이날 어린이 등 30여 명이 참가한 조리읍 역사기행은 파주시 서상일 협력사서와 동문그린작은도서관 노영숙 활동가, 광탄작은도서관 김정임 활동가, 조리도서관 이미아 사서 등이 ‘파주시 작은도서관 활성화 사업’의 하나로 진행했으며, 안내와 해설은 현장사진연구소 이용남 사진가가 맡았다. 참가자들은 “여기(캠프하우즈)에 아파트를 짓는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렇게 자연 환경이 뛰어나고, 주한미군 주둔이라는 분단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에 아파트를 짓기보다는 시민을 위한 역사 공원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미군이 사용했던 도서관은 다른 용도로 개발하기보다 ‘평화도서관’ 등 그 기능을 그대로 살려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파주 장곡리에 세워졌다가 강원도 동해시로 옮겨진 고 장준하 선생 시비와 새긴돌을 파주로 다시 이전하기 위한 ‘장준하시비이전위원회’(준비위원장 이경형)가 오는 11월 7일 오후 3시 탄현면 낙하리 ‘다온숲브루어리’에서 발기인 5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창립식을 갖는다. 이경형 준비위원장은 “항일독립운동과 민주화투쟁, 통일운동의 지도자였던 장준하 선생에 대한 숭모의 뜻을 모아주신 발기인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파주시민의 정성과 뜻으로 본 사업이 활력 있게 진행될 수 있도록 많은 시민들이 참여해 주실 것을 당부한다.”라고 말했다. 24일 현재 발기인은 전 장준하공원추진공동위원장을 맡았던 이경형 헤이리예술마을 전 이사장과 전 중앙선관위 김대년 사무총장, 김도현 전 문체부 차관을 비롯 박호식, 송대훈, 고성일, 이용남, 조영애,임우영, 정도락, 장경선, 김언호, 천호균, 박종일, 조복록, 김요섭, 고형권, 박인애, 박은주, 임규내, 우경복, 임동권, 강석재, 안명남, 목진혁, 김장석, 조항원, 안재영, 양용복, 이수용 씨 등이다. 이날 ‘장준하시비이전위원회’ 고문을 맡은 김도현 전 문체부 차관이 백기완 선생 등 민주화동지들과 함께 장준하 선생 시비를 만들게
한국전쟁 시기 병력과 전쟁물자 수송을 위해 건설된 임진강 ‘리비교’의 상판과 철빔이 66년 만에 철거되면서 공사 당시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조국통일’ 등 힘들었던 사연이 철빔 안쪽에 적혀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파주바른신문이 17일 리비교 공사 현장을 취재하면서 임진강 바지선에 설치된 크레인이 철빔을 들어올릴 때마다 초망원렌즈로 확인한 결과 철빔 여러 곳에 한글과 한자로 쓰여진 글들이 나타났다. 철빔에 쓰여진 글은 ‘다 글렀다. 이제는 청춘도 꽃(다운) 시절도 꿈같이 흘렀어라. 차라리 꽃잎처럼...피투성이에 젓은 이 몸을 이 눈물 위에 던져 후세에서 나의 행복을 구하리니 아, 안타까운 나의 소원이여! 단 한 번이라도 그대와 만나고저 살고 있소...’라는 내용으로 추정되며, 그 옆에 ‘조국통일’이라는 문구가 크게 쓰여 있다. 파주시는 다리 보강공사가 완료되면 리비교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세울 계획이다. 그런데 지난 3월 공공디자인 주민설명회를 개최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확정된 것은 한국전쟁 당시 대전에서 전사한 미군 리비 중사의 조형물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리비 중사가 리비교 건설과 전혀 연관성이 없는 데다 1953년 공사 중 카투사 김호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