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환 파주시장이 ‘코로나19’의 지역사회 감염이 확산됨에 따라 미국 방문 일정을 이틀 앞두고 전격 취소했다. 최 시장은 22일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와 오클랜드에서 열리는 ‘한국 고아의 해외 입양과 한국의 경제 성장’ 콘퍼런스에 초청돼 파주시가 반환 미군부대 캠프하우즈에 계획 중인 ‘평화와 평등 마을’과 해외입양인을 위한 ‘엄마 품 동산’ 확장 조성에 대해 설명하고, 자매도시인 글린데일시를 방문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서울 종로와 경북 대구 등에서 감염원을 알 수 없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함에 따라 시장을 대신해 황수진 문화교육국장을 보내기로 했다. 최종환 시장은 지난해 일본 자매도시인 나가사키현 사세보시와 후쿠오카현을 방문할 계획이었으나 일본의 반도체 소재 부품 수출제한조치로 일본제품 불매운동 등 반일 감정이 고조돼 취소했고, 호주 자매도시 방문 역시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취소한 바 있다.
서울대 정근식 사회학 교수가 반환 미군부대 캠프하우즈를 답사한 후 이정옥 가족여성부 장관,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주한미군 주둔으로 형성된 파주 기지촌의 폭력적 문화가 주민들의 삶속에 고스란히 파고들어 그로 인한 정신적 피해가 큰 것 같다며 이를 치료할 트라우마센터 설립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동북아시아센터(센터장 정근식 교수) 연구원들은 8일 파주시청 황수진 문화교육국장의 출입 협조를 받아 조리읍 봉일천4리에 있는 반환 미군부대 캠프하우즈를 방문, 현장사진연구소 이용남 사진가의 안내로 엄마 품 동산과 미군이 사용했던 도서관 건물 등을 살펴봤다. 정근식 교수와 연구원들은 “파주시가 반환 미군부대에 해외입양인을 위한 엄마 품 동산을 조성하고 이곳을 평화공원으로 개발하는 정책은 세계적으로 주목받을 만한 일이다. 우리 동북아시아센터도 이러한 파주시의 계획을 널리 알리고 연구해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이날 정근식 교수는 경기연구원 이한주 원장과 가족여성부 이정옥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캠프 하우즈에 트라우마센터가 설립될 수 있도록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
현장사진연구소(현사연)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개최되는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의 해외 입양 정책과 한국의 경제 성장’을 다루는 학술대회 초청으로 사진 전시회를 연다. 현사연은 2월 22일 캘리포니아 버클리와 오클랜드에서 개최되는 한국의 입양 정책과 그에 따른 경제 성장 컨퍼런스에 참가해 파주의 반환 미군부대 ‘캠프 하우즈’에 조성된 ‘엄마 품 동산’ 이야기와 한국전쟁의 배고픔 때문에 자녀를 해외로 입양 보내고 그 아픔을 가슴에 묻고 사는 기지촌 여성, 영문도 모른 채 해외로 떠나야만 했던 입양인들이 어머니를 찾아 파주 기지촌 곳곳을 헤매는 모습 등의 사진을 전시한다. 현장사진연구소 이용남 사진가는 2003년 미국 뉴욕의 현대미술관 모마(MOMA PS1)와 브라운대학 왓슨국제문제연구소 초청으로 사진전을 연 것을 비롯 2015년에도 미국 버클리대학이 개최한 한국의 기지촌 문제 컨퍼런스에 패널로 참가하는 등 꾸준히 파주의 미군 위안부와 해외입양인의 실상을 세계에 알려왔다.
파주시보건소 일부 팀장들이 최종환 시장의 인사를 비난하는 문건을 만들어 정치권에 돌리는가 하면 파주시의원을 직접 찾아가 면담하거나 전화로 ‘미친 인사’를 문제삼아 달라는 로비를 집중적으로 한 사실이 드러났다. 최광신 팀장을 비롯 신계숙, 이정숙, 류춘매, 황옥순 팀장 등은 지난 8일 파주시 정기인사에 자신들이 승진에서 탈락하자 이를 비난하는 문건을 만들어 파주시의회 안명규 부의장 등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들에게 배포하는 한편 더불어민주당 최유각 자치행정위원장과 민중당 안소희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인사 부서를 담당하는 상임위나 5분 자유발언에서 지적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들은 문건에서 “승진 발표가 나고 보건소 조직은 커다란 폭탄을 맞은 듯 했다. 여기저기서 화를 내고, 심지어 이건 ‘미친 인사’라는 말까지 돌았다.”라고 적시했다. 안명규 부의장은 “평소 안면이 있는 최광신 팀장이 시의회로 찾아와 인사 불만을 호소했다. 그래서 문건을 최창호 의원에게 건네 참고하라고 했다. 최 팀장과는 공직에 들어와 알게 된 사이로 학연이나 지연 등은 없다.”라고 말했다. 최유각 자치행정위원장은 “토요일에 최광신 팀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부당인사를 바로잡아달라는 부탁이었다.
최종환 시장이 부당 인사를 했다며 이에 항의하는 문건을 만들어 정치인들에게 배포한 파주시 보건소 보건행정과 최광신 팀장이 김순덕 보건소장에게 허위 사실을 적시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파주시보건소 김순덕 소장은 “최광신 팀장이 문건을 만들어 파주시의원에게 돌렸다는 사실을 지난 17일 오후 1시께 파주시의회 최유각 자치행정위원장이 ‘(승진을 하려면) 제가 생각하기엔 열심히 일해 봤자 소용없고 정치적으로 잘 해야 할 것 같아요.’라고 적힌 문건을 보여줘 알게 됐고, 이날 곧바로 보건소로 돌아와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느냐고 최광신 팀장을 사무실로 불러 따졌더니 최 팀장이 인사의 부당함을 알리려면 이 정도 내용은 들어가 줘야 할 것 같아 문건에 넣었다며 임의로 써넣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라고 밝혔다. 취재진은 김순덕 보건소장의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최광신, 이정숙, 신계숙, 류춘매, 황옥순 팀장에게 문건 내용 중에 김순덕 보건소장이 ‘제가 생각하기엔 열심히 일해 봤자 소용없고 정치적으로 잘 해야 할 것 같아요.’라는 말을 한 것으로 적혀 있는데, 김순덕 소장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그리고 최광신 팀장을 사무실로 불러 따졌다고 하는데 이 같은 주장이
파주시 보건소장이 인사 불만을 갖고 찾아온 부하 직원에게 정치력이 없으면 아무리 일을 해봤자 소용없다는 발언을 해 논란이다. 이는 파주시 청렴도가 경기도 내 하위권이라는 국민권익위원회 발표 이후 이를 회복하기 위해 간부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는 파주시의 노력에 역행하는 것이어서 파장이 일고 있다. 파주시보건소 최광신 팀장은 14일 “안녕하세요 시장님, 보건행정과 감염관리팀장 최광신입니다.”라는 인사말로 작성된 A4용지 6장 분량의 항의성 문건을 파주시와 자유한국당 소속 정치인에게 배포했다. 이 문건에는 “어제 보건소장님께 보건소 팀장들이(신계숙, 이정숙, 류춘매, 황옥순) 들어가서(보건소장 집무실) 인사의 부당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오는데... (김순덕 보건소장이) 제가 생각하기엔 열심히 일해 봤자 소용없고 정치적으로 잘 해야 할 것 같아요. 일 잘 해봐야 소용없어요.”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최광신 팀장은 “보건소 수장의 입에서 나온 기각 막힌 말이다. 파주시에 정의라는 게 언제부터 이렇게 사라진 것인가.”라고도 언급했다. 이에 대해 김순덕 보건소장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 나는 그런 말을 한 사실이 없다. 어떻게 부하 직원에게 승진하려면 열심
‘장준하시비이전위원회’(위원장 이경형)가 통일의 길목 파주에 세워졌던 장준하 선생 시비와 새긴돌이 강원도 동해시로 가게 된 사연을 공개했다. 장준하시비이전위원회(이하 위원회)는 18일 문산 프리마루체에서 신년회를 갖고 조리읍 장곡리 검문소 주변에 있던 장준하 선생 시비가 만들어지게 된 과정과 동해시로 옮겨진 과정 등을 위원회 활동보고 형식으로 소상히 밝혔다. 독립운동가인 장준하 선생은 1975년 8월 17일 포천시 이동면 약사봉에서 추락해 숨졌다. 의문사 10주년이 되던 1985년 9월 통일문제연구소 대표 백기완 선생을 중심으로 ‘장준하선생 새긴돌건립위원회’가 설립됐다, 백기완 선생이 남긴 육필 원고에 따르면, 새긴돌 소재는 백두산 모습과 범이 기지개 펴는 형태의 까마귀돌(오석)로, 길이 약 열 자(300㎝), 높이 약 여섯 자(180㎝)인 고인돌 형식의 제작 원칙을 세웠다. 위원회는 까마귀돌을 찾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1986년 이른 봄 충남 운천의 한 채석장 주인의 도움으로 주재환, 양영환, 장호권 씨 등이 구했다. 그리고 1986년 5월 주재환 선생의 책임 아래 민예총 예술가 김용태, 김정현, 양영환, 윤용환 등이 제작에 참여했다. 새긴돌에 새겨
‘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이 제20대 국회가 끝남에 따라 사실상 폐기됐다. 이 법률안은 2017년 7월 14일 더불어민주당 유승희, 윤후덕 의원 등 18명이 발의했다. 이 법률안의 제안 이유는 “한국전쟁 이후 주한미군기지촌 주변 여성들은 한국의 경제와 안보 두 측면에서 일정한 기여를 하였으며,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1960년대에 기지촌 성매매로 인한 수입이 대한민국 GNP의 25%를 차지하는 등 한국경제의 근간을 마련하고 경제를 부양하였다.”라고 돼 있다. 파주지역 미군 기지촌에서 미군 위안부 생활을 한 1930년생 할머니는 파주바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제대로 해결이 안 되는데 우리 미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이 되겠는가. 그래도 우리는 달러를 엄청나게 벌어들인 애국자다. 그럼에도 우리는 국가로부터 생활보호대상자 혜택을 받는 것조차 어려운 상태다.”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할머니는 “문재인 대통령 마음이 너무 착해 사람들이 대통령을 주물럭거리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할머니를 비롯 파주지역 미군 위안부 20여 명은 지난 2014년 6월 한국정부가 국가안보와 경제개발이라는 미명으로 기지촌을 만들
한국전쟁 당시 임진강 리비교 초소 분대장이었던 98세 손진규 옹이 파주시의 임진강 리비교 철거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손 옹은 한국전쟁에 참전해 리비교가 건설되기 전 그 자리에 놓였던 부교와 곤돌라의 안전을 적으로부터 지켜내는 임무를 맡았다. 리비교는 한국전쟁 시기인 1953년 준공됐다. 콘크리트 다리가 건설되기 전까지는 군사용 부교와 목재다리, 곤돌라 등을 통해 병력과 군수물자를 날랐다. 임시 교량은 장마철이 되면 모두 떠내려갔다. 개성이 고향인 손진규 옹의 처갓집은 임진강 건너 진동면 하포리다. 한국전쟁과 함께 피란길에 오른 처갓집 식구들은 리비교가 놓이기 전 나룻배를 타고 임진강을 건넜다. 그리고 파평 장파리에 정착했다. 손 옹은 오랜 세월 민간인통제선이 된 처갓집 근처 논밭을 지금도 일구고 있다. “리비교를 고친다고 출입을 못 하게 해 10분이면 가는 길을 저 아래 전진교로 돌아가는 바람에 30분이나 더 걸리고 있어. 그래서 다리를 빨리 고쳤으면 좋겠는데, 요새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리비교를 모두 걷어내고 새롭게 놓아야 한다는 거야.” 손진규 옹은 리비교가 모두 철거된다는 소식에 흥분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그 다리가 참 알고 보면 역사가 많은
파주 시민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군부대가 주민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다. 육군 제2기갑여단(여단장 손석민)은 12월 27일 군 장병 가족과 주민 7천여 명을 ‘제1회 청년드림·국군드림 페스티벌’에 초대했다. 2기갑여단 공보정훈참모 이종민 소령은 “오늘의 첨단과학기술군과 청년드림, 국군드림 페스티벌은 변화하는 안보 환경과 제4차 산업시대를 맞아 이를 반영하기 위해 개최하게 됐다. 내년에도 장단콩축제와 같이 파주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는 행사를 전반기와 후반기 각각 두 차례 추진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한국전쟁 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피엑스마을(군 마켓)’로 불리기 시작해 현재도 버스정류장 명칭이 ‘PX마을’인 이곳 2기갑여단에는 미7사단 소속 ‘캠프 로즈(Camp Ross)’가 있었다. 이 부대에는 군수물자를 지원하는 큰 물류창고가 있어 생계 해결을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PX마을’로 불렸다. ‘캠프 로즈’는 1971년 닉슨 독트린 정책에 따라 한국 주둔 미군 2만여 명이 감축되면서 미국으로 철수했다. 이후 1968년 4월 경기도 양주에서 창설한 기갑부대가 1973년 6월 27일 ‘육군 제2기갑여단’으로 파주시 아동동 ‘PX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대전지역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조합원 70명이 21일 반환 미군부대 캠프하우즈 안에 조성된 ‘엄마 품 동산’을 찾았다. 참가자들은 현장사진연구소 이용남 사진가의 엄마 품 동산 조성 취지를 듣고 분단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아픔을 너무 몰랐다고 했다. 엄마 품 동산은 파주시가 해외입양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지난해 9월 준공했다. 이들은 이날 1960년대 번성했던 파주읍 용주골 옛 미군 기지촌의 골목도 답사했다.
파주시가 반환 미군기지인 캠프하우즈를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평화공간으로 조성한다. 언론협동조합 파주바른신문은 오랜 기간 파주 미군 기지촌을 기록해 온 현장사진연구소와 공동으로 캠프하우즈를 둘러싼 지역사회를 들여다본다. 2001년 7월 16일 미군 제2사단 공병여단 캠프하우즈 후문. 건설노동자 전동록(당시 53) 씨가 미군이 설치한 고압선에 감전됐다. 전동록 씨는 사고 뒤 팔 다리를 모두 잘라야 했고, 사실상 ‘식물인간’이나 다름없이 살아오다 2002년 6월 6일 오후 12시 25분께 일산병원에서 배에 물이 차고 혈관이 터지면서 모진 삶을 마감했다. 부인 이명화(48) 씨는 영안실 유리창을 부여잡고 절규했다. 당시 전동록 씨가 감전된 문제의 고압선은 캠프하우즈 울타리에서 약 500m 떨어진 파주시 조리읍 뇌조리 조산말 개울 옆에 있는 양수장 펌프를 가동하기 위해 설치했던 것으로, 평소 조봉환 이장 등 마을 주민들이 안전사고 위험을 계속 지적하며 다른 곳으로의 이설을 요구했으나 미군쪽은 법적 하자가 없다며 안전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뇌조리 조산말 양수장에서 미군부대로 연결된 2만2900볼트의 고압선은 전동록 씨가 일하던 건설 현장 지붕으로부터 불과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