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장곡리 군 검문소 앞에 세워졌다가 동해시로 옮겨진 민족지도자 장준하 선생의 시비를 다시 파주로 모셔오기 위해 뜻있는 사람들이 모임을 가졌다. ‘장준하 시비 이전 위원회’는 12일 탄현면 낙하리 다온숲에서 모임을 갖고 이경형 헤이리예술마을 전 이사장을 위원장으로 추대하고, 집행위원장에 김대년 중앙선관위 전 사무총장을 선임했다. 이날 모임에는 헤이리예술마을 이경형 전 이사장, 중앙선관위 김대년 전 사무총장, 연세송내과 송대훈 원장, 우호건설 박호식 대표, 현장사진연구소 이용남 사진가 등이 참석했다. 국민대 고성일 교수는 학교 수업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위원회는 11월 7일 오후 3시 다온숲에서 50여 명 규모의 발기인이 참석하는 정식 모임을 개최해 동해시에 있는 시비와 새긴돌을 탄현면 통일동산의 장준하 공원으로 이전하는 계획을 추진할 예정이다. 장준하 선생 새긴돌은 1989년 파주시 조리읍 장곡리 군 검문소 앞에 세워졌으나 괴한이 시비를 불태우는 등 탄압으로 강원도 동해시로 옮겨졌다.
문산 선유리에서 흑인 미군병사와 한국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장예은 육상선수가 2일 파주시청 육상부 코치에 임용됐다. 장 코치는 그동안 무릎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접고 유통회사 현장 사원으로 일을 해왔다. 장예은 코치는 1987년 문산 선유리 미군부대 ‘캠프 펠렘’에서 근무하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출신 콜린스(Collins. 66) 하사와 어머니 장서현(64) 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 또래 아이들보다 체격이 좋은 장 코치는 일찍이 육상선수로 발탁됐으나 농구선수로 전향해 2006년 우리은행 농구단에 입단했다. 그러나 2008년 다시 육상으로 종목을 바꿔 김포시청과 화성시청 육상부 소속 선수를 거쳐 2017년에는 인천 남동구청 육상부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제13회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국가대표를 비롯 제14회 전국실업육상경기선수권대회 여자 400m와 1,600m 계주에서 우승하고, 제65회 전국실업육상경기선수권대회 여자 400m와 1,600m 우승, KBS배 전국육상경기선수권대회 800m에서 우승하는 등 다수의 수상 경력과 함께 전문 스포츠 지도자 2급 자격을 갖고 있다. 현재 장예은 어머니는 무릎 관절통이 심해 거동을 잘 못하고 있는 상태로, 그동안 장 코
고 김광석이 불렀던 ‘이등병의 편지’ 원작자 김현성(56) 씨가 파주바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목포의 눈물’, ‘안동역에서’ 등 지역을 배경으로 한 노래처럼 파주도 미군 기지촌 사람들의 애틋한 삶을 노래로 만들어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겠다고 밝혔다. 파주 광탄 출신 김현성 씨는 “어린시절 내 생활 주변에 미군 부대가 많았다. 친구들과 함께 부대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뒤적거렸던 기억이 있고, 미군 병사와 한국 여성들의 문화도 엿볼 수 있었다. 바로 이런 군사문화의 환경 속에서 ‘이등병의 편지’와 ‘가을우체국’이 만들어졌다. 이곳(광탄면 신산2리)에 ‘이등병의 거리’를 조성하겠다는 것은 기지촌 역사 보전은 물론 지역 주민들에게 삶의 활력과 자긍심을 심어주는 매우 뜻깊은 일이다.”라고 평가했다. 김 씨는 “광탄면에서 ‘이등병의 편지’가 만들어졌듯이 아직 제 노래에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언젠가는, 늦지 않은 시간에 파주읍, 법원읍, 문산읍 등 군사문화의 영향을 받았던 기지촌 사람들의 애틋한 삶을 노래로 기록을 남길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파주시는 25억 원을 들여 ‘이등병의 편지’ 원작자 김현성 씨의 고향인 광탄면에 ‘이등병의 마을 길’ 등 ‘김현성 거리’ 조성 계
보곡은방이 보곡금방으로 이름을 바꿨다. 일제강점기 시계방으로 시작한 금촌사거리 근방의 보곡은방에는 금은을 녹여 반지와 목걸이 등 예물을 만들던 세공사 김연배(65) 씨가 있었다. 그런 그가 지금은 세공사를 그만두고 노래방을 운영하고 있다. 세공사 김 씨는 충남 논산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에서 세공 기술을 배워 보곡은방에서 일을 하게 됐다. 창업자 이응준(102) 할아버지에 이어 대물림한 아들과도 함께해 온 사실상 보곡은방의 산증인이다. 보곡은방에 들어서면 시계 진열장 사이로 작은 골방이 눈에 띈다. 이곳이 파주에서 하나뿐이었다는, 금은 보석을 세공하는 작업실이다. 두꺼운 원목으로 짜여져 가무잡잡한 손때가 묻어나는 세공 작업대 위에는 금을 녹이는 장치와 수십여 개의 작은 세공 도구들이 잘 정돈되어 있다. 작업대 아래에는 금반지를 늘리거나 모양새를 다듬을 때 쓰는 통나무 작업대가 지난 세월을 보여 주고 있다.
파주시의회 운영위원장인 최창호 의원이 탄현면 낙하리 경로당을 찾았다. 할머니들이 최 의원을 반갑게 맞았다. 곧이어 마을 김낙인 이장과 정광채 노인회장, 그리고 캠핑장을 운영하고 있는 우종범 대표도 모였다. 그런데 모두 얼굴이 굳어 있다. 문산-도라산 간 고속도로를 건설하면서 낙하리 마을이 두 동강 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주민들은 8월 28일 오후 1시 문산행복센터에서 열리는 ‘문산-도라산 간 고속도로 전략환경영향평가 공청회’ 참석과 파주시의회 본회의 방청, 파주시장 면담 등을 통해 호소할 계획이다. 최창호 의원은 “정부가 국책사업을 명분으로 마을 공동체가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특히 국토부가 문산-도라산 간 고속도로를 건설하면서 자유로 낙하리 IC에서 새로 생기는 탄현 IC를 연결하는 제1공구 접속구간 기본안을 볼 때 우리 파주시의 엘지로 등 지방도와의 원활한 소통이 되지 않고 있다.”라며 최종환 파주시장이 직접 나서 줄 것을 당부했다.
탄현면 낙하리 김낙인 이장이 최종환 파주시장에게 보내는 영상편지입니다. 김 이장은 문산-도라산 간 고속도로 건설 중 자유로 접속도로가 마을을 통과하는 것에 깊은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김낙인 이장이 최종환 시장에게 띄우는 편지 내용입니다. “최종환 시장님, 탄현 낙하리 마을은 그 역사가 500여 년입니다. 임진강을 경계로 북한 마을과 마주하고 있으며 그런 지형적 특수성 때문에 오랜 세월을 국가 안보의 첨병 역할과 그와 관련된 많은 제약을 받아왔습니다. 임진강 철책은 민간인통제선이 되었고,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군부대의 통제를 받고 있습니다. 시장님도 잘 알다시피 자유로 건설은 마을과 문전옥답을 갈라놓았고, 자유로에서 엘지디스플레이를 연결하는 도로는 낙하리 마을을 잘랐습니다. 마을 머리 위에 있는 쓰레기 소각장은 또 어떻습니까? 주민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데도, 그래도 우리 주민들은 끽소리 안 하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노태우 정권 때는 또 어땠습니까? 통일동산을 만든다며 탄현 법흥리와 성동리 등 마을을 강제로 빼앗아 주민들을 모두 쫓아내더니 통일동산은커녕 그 땅을 아울렛이나 모텔 등 돈 많은 사람들에게 넘겨주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문
최종환 파주시장이 파주시와 고양시 경계 조리읍 장곡리 통일로 주변에 세워졌던 장준하 새긴돌을 강원도 동해에서 모셔오겠다고 공개 선언했다. 최 시장은 17일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장준하추모공원에서 열린 장준하 선생 서거 44주기 추모식 추모사를 통해 “1989년께 우리 파주시에 세워졌던 장준하 선생 새긴돌이 갑자기 사라졌는데 최근 한 지역언론인의 추적 취재로 강원도 동해시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파주시는 이 새긴돌을 모셔와 장준하추모공원에 다시 세우겠다.”라고 밝혔다. 이날 추모식에는 유족들과 김원웅 광복회장, 박정, 김두관 국회의원, 손배찬 파주시의회 의장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장준하 선생의 장남인 (사)장준하선생기념사업회 장호권 회장은 “이 나라가 다시는 외세에 흔들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장준하 선생은 1944년 일본군에 징집되어 중국 쉬저우지구에 배속되었으나 6개월 만에 탈출해 광복군에 합류했으며, 일본의 항복으로 중국으로 복귀한 뒤 1945년 11월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귀국했다. 이후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 반대운동을 주도하던 중 1975년 포천의 약사봉에서 의문사했다.
통일의 길목에 세워졌다가 괴한들이 새긴돌에 3일간 불을 지르거나 거적을 덮어 추모객들의 접근을 차단하는 등 시련을 겪었던 민족지도자 장준하 선생의 새긴돌이 강원도 동해시 백두대간 이기령 자락에 있는 것으로 취재 결과 확인됐다. 광복 74주년 기념일인 8월 15일 새벽. 파주에서 출발한 취재차량이 폭우를 동반한 태풍 크로사의 영향으로 어렵게 동해시 무릉계곡 입구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다시 3km의 깊은 골짜기를 따라 들어갔다. 불어난 계곡물이 급류로 변해 바위를 내리치는 소리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와 뒤섞여 그날의 함성 대한독립만세처럼 들렸다. 그러나 새긴돌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다행히 15가구 정도가 살고 있는 산골 이기리에서 10여 년간 마을 일을 맡았던 오화선(72) 전 이장을 만났다. 오 전 이장은 ‘장준하 새긴돌’ 사진을 보여주자 백기완 선생을 기억해 냈다. 20년 전인가 그보다 더 됐는가, 여하튼 새긴돌이 마을에 들어올 때 함께 거들었다고 했다. 장화로 갈아신은 오 전 이장을 따라 석현사 앞으로 갔다. 우산대로 풀섶을 헤치며 들어가자 그곳에 장준하 새긴돌이 비를 맞고 있었다. 처음 회색이었던 새긴돌은 괴한
파주시청 주변 카페가 파주시의 1회용품 줄이기 운동에 동참하는 의미로 텀블러를 사용하는 손님에게 커피 등 과일 음료를 200원에서 최대 500원까지 깎아 주기로 했다. 문화로 보훈회관 1층에 있는 ‘에스쁘아’는 커피류 200원을, 쥬스 등 음료는 300원을 할인해준다. 시민회관길에 있는 ‘커피에 반하다’는 전품목에 대해 200원을, ‘안단테 153’은 토마토 쥬스 등 과일 음료를 200원~500원을 할인하고, ‘칼디’는 전품목 할인 쿠폰을 적용하며, 중앙로 동문인쇄 건물에 있는 ‘투썸플레이스’는 전품목을 300원 할인한다.
대한민국 최대 미군기지였던 파주읍 용주골 이야기가 외국 학술지 심사를 거쳐 영문판으로 출간될 계획이다. 영국, 아일랜드,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등 영미권에서 출판될 이 책은 아마존 판매와 함께 해외 학교 도서관 등에 보급될 예정이다. 서울대 아시아연구소는 “이제까지의 기지촌 연구가 여성에게만 초점을 둔 반면 기지촌이라는 공간이 어떻게 변화해 갔는지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연구가 없었기 때문에 파주읍 연풍리의 공간적 시각을 중심으로 지역경제 생태계, 지역의 통치체제, 한미관계, 안보와 기지촌 등 재개발 문제 등을 분석하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이승욱 교수는 국내가 아닌 외국에서 영문판으로 출간하는 이유에 대해 “연구주제 자체가 해외에서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문제로 판단했다. 특히 이 책은 대중서적이 아니라 학술서적이어서 국내에서는 아무래도 기지촌 연구자가 많지 않아 영문판을 내게 되면 해외의 기지촌 연구에도 반향을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현장사진연구소와 함께 용주골 등 파주 기지촌을 2년간 연구해 온 서울대 아시아연구소는 올 연말까지 자료를 확정하고 내년 상반기 논문 집필과 함께 외국 학술지의 심사를 거쳐
“개울에 작은 다리가 하나 있었어요. 위쪽 개울은 좁았는데 다리 있는 데서 넓어졌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개울 옆에는 논과 미군부대가 있었어요.” 46년 만에 한국을 찾은 이미성(54. Stephane Myers) 씨의 기억이다. 이미성 씨는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5살 때 건설노동자인 아버지를 따라 파주로 왔다. 그런데 공사현장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네 명의 자녀를 끌고 파주를 떠나 고양시 대자동에 있는 다리 밑에서 살았다. 이미성 씨는 어머니가 날품팔이를 나가면 오빠와 함께 두 동생을 보살폈다. 1973년 초 어머니가 폐결핵과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났다. 앞길이 막막해진 네 남매는 경찰관의 도움으로 ‘홀트아동복지회’로 보내졌고, 그해 7월 미국 오레곤으로 각각 입양됐다. 최종환 파주시장이 이미성 씨를 위로했다. 이 씨는 자신이 살았던 마을을 가 보고 싶다고 했다. 현장사진연구소 이용남 사진가가 개울과 붙어 있는 미군부대와 다리가 있는 곳을 몇 곳 특정해 길잡이를 했다. 우선 광탄면 신산리에 있었던 미군부대 ‘캠프 스탠톤’으로 갔다. 이 씨는 부대 울타리를 끼고 흐르는 개울과 다리를 바라보며 옛 기억을 떠올렸다. 이곳은 아닌 것 같
북한군 묘지에 어린 학생들과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북한군 묘역 입구에는 어른들이 쳐놓은 천막이 있다. 그리고 그 천막에는 “파주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펼침막이 붙어 있다. 학생들은 신기한 듯 그 옆을 지나 묘역으로 들어가 평화를 염원한다. 요즘 북한군 묘역의 두 모습이다. 한국전쟁 69주년인 25일 자유한국당 서창연 ‘인민군 무장공비 북송추진위원회’ 공동대표 등 보수단체는 금촌역 광장에서 인민군 유해 북송 추진과 유엔참전국 추모공원 조성 촉구 국민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진보단체 등 파주역사 올레 참가자들은 북한군 묘역에서 구상 시인의 ‘적군묘지에 서서’를 낭독했다. 초토의 시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웠던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 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욱 신비로운 것이로다. 이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30리면 가로막히고 무인 공산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